항목 ID | GC4000814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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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二大惡法反對 慶北勞動團體公同鬪爭委員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1961년 3월 30일 대구광역시에서 노동단체들이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반대하여 결성한 단체.
[개설]
이대악법반대경북노동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1961년 3월 30일 대구의 노동신문사에서 결성되어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하였다.
[설립 목적]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장면 정권의 「데모규제법」과 「반공특별법」 제정을 무산시키기 위한 목적으로 조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1961년 3월 30일 경북교원노조 위원장 김문심(金汶燖)과 자유노동조합 대구시연맹 위원장 한위술(韓衛術)이 중심이 되어 각 노동단체 대표들과 함께 노동신문사에서 결성하였다. 3월 31일과 4월 1일 이틀에 걸쳐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공동투쟁위원회, 이대악법반대경북학생공동투쟁위원회와 연합하여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이하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를 조직하였다.
이대악법반대경북공투위는 첫 행사로 4월 2일 저녁 대구역 광장에서 정부 당국의 원천 봉쇄에도 불구하고 이대악법대구궐기대회 및 횃불데모[대구데모사건] 개최를 강행하였다.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이대악법반대경북학생공동투쟁위원회가 만든 격문을 뿌리면서 시위에 합류하였다. 시위대는 횃불을 들고 “반공이란 구실보다 배고프다. 통일하여 살아보자. 노동자 농민이여 일어서라. 학생들이여! 시민들이여!”, “국회는 해산하라” 등의 구호를 외쳤다. 경찰 당국은 2,000여 명의 병력을 동원하여 시위대를 강제 해산시켰으며, 이후 대회 관계자 35명을 구속하는 등 강경하게 대응하였다. 이대악법대구궐기대회 및 횃불데모는 4·19혁명 이후 최대의 긴장감을 불러일으킨 대중집회였다.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이대악법반대운동을 계속 이어 갔지만 1961년 5월 16일에 일어난 군사쿠데타 이후 여러 정당·사회단체와 함께 강제 해산되었다.
[의의와 평가]
경북노동단체공투위는 대구 지역의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주도하며 4·19혁명의 민주적 성격을 재확인시켰으며, 전국의 이대악법반대운동을 고조시키는 데 일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