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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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傳統市場 |
영어공식명칭 | Tradtion Market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정의]
대구광역시에서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
[개설]
전통시장(傳統市場)은 대구광역시에서 사회적·경제적 필요에 의하여 조성되고, 상호 신뢰에 기초하여 상품이나 용역의 거래가 전통적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장소이다.
[건립 경위]
대구 지역 최초의 시장은 조선 중기인 1658년(효종 9) 전국 최초의 계절 시장으로 문을 연 약령시이며, 이후 1669년(현종 10) 큰 장[서문시장]이 지역 최초의 정기 시장으로 개설되었다. 대구읍성의 북문 밖에서 열리던 읍내 장은 이후 경상감영의 서문 밖, 서상면 빈터로 옮겨졌으며, 시장의 개시일은 음력 2일과 7일이었다. 1922년 9월에는 시장 서남쪽에 있는 천왕당지(天王堂池)를 메운 곳에 시장을 조성하였으며, 대구 성곽의 서쪽문 밖에 있다고 하여 ‘서문시장’이라 불렀다.
서문시장은 의류 도매시장으로 유명하다. 일제강점기 대구 지역에는 대구제사[동인동], 편창제사[대봉동], 조선제사[태평로] 등 제사(製絲) 공장뿐만 아니라 조선방직[칠성동] 등 일본인이 경영하는 방직 공장이 속속 들어섰다. 해방과 함께 일본인이 경영하던 대부분의 공장이 일시에 조업을 중단함에 따라 조선인이 경영하는 공장은 원료를 구하지 못하여 문을 닫는 경우가 속출하였다. 공산품이 생산되지 않아 생활필수품이 품귀 상태에 이르자 1946년 7월 15일 미군정은 ‘생활필수품 최고 가격제’를 실시함과 동시에 폭리 상인 단속에 나서게 된다. 동시에 ‘시장공영화정책’을 병행함에 따라 시장은 법인 또는 조합의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변천]
1945년 해방과 1950년 6·25전쟁은 지역 시장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해외동포와 피난민의 유입으로 1950년 27만 명이던 인구는 1959년 70만 명으로 늘어났다. 대구역과 가까운 교동 옛 권번 터 주위로 피난민들이 모여들면서 교동시장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1950년대 지역에서는 서문시장[12,155평], 남문시장[7,896평], 북문시장[2,183평], 동문시장[건평 413평], 삼덕시장[부지 766평], 원대시장[3,150평], 내당우시장[4,094평], 봉덕시장[1,060평], 덕산시장[313평], 국제시장[397평], 교동시장[497평] 등이 주요 시장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1961년 8월에 공포된 「시장법」에 따라서 대부분의 공설시장이 시장 상인들의 모임인 시장번영회로 불하되어 민영화되었다. 1960년대 후반 인구가 100만 명을 초과하게 되자 사설 시장이 대량으로 신설되면서 변두리 주택가에는 무허가 시장도 많이 생기게 되었다. 이 당시 대구의 시장들은 공설이든 사설이든 대부분 일용 잡화 및 소채류를 취급하는 소매시장의 역할을 주로 담당하였는데, 예외적으로 비교적 전문화된 시장이 몇 군데 있었다. 즉, 서문시장 제1지구의 직물부와 포목부가 도매 기능을 주로 맡고 있었으며, 내당우시장, 동국철물시장, 원대청과시장, 팔달시장[소채류], 교동시장[피복류] 등은 전문시장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1970년대는 대구의 상업사에서 유통기구의 양적 성장은 물론 근대화의 물결이 세차게 일어 질적인 변화에 커다란 발전을 이룩한 시기이다. 사설 시장의 급격한 증가와 더불어 도소매업체도 크게 늘어났고, 백화점, 슈퍼마켓, 슈퍼체인 등 대형 소매점 시대가 본격화됨으로써 유통 구조에 일대 변혁이 일어났다. 그리고 동신지하상가의 조성을 계기로 지하상가 시대가 개막된 때이기도 하다.
1970년 7월 경부고속도로의 개통과 계속되는 수도권 경제력 집중으로 전통적인 대구의 도매 기능은 상대적으로 위축되었다. 특히 전국을 대상으로 하던 대구의 직물 도매 기능은 1970년대에 완전히 퇴색하였고, 대구에서 만들어진 직물 제품마저도 서울의 종합도매시장[동대문시장, 방산시장, 광장시장]을 통하여 구입하는 실정이다.
1980년대는 교통과 정보통신의 발달로 도소매업의 상대적인 쇠퇴와 섬유 도매업의 계속적인 부진 현상을 불러왔다. 소매업에서는 전통시장은 쇠퇴하였으나, 백화점 등 현대적인 소매 기구는 크게 발달하고, 대규모의 농산물 도매시장의 개설에 따른 비합법적인 농산물 유통이 양성화되었다.
전통시장의 쇠퇴 원인은 소비자의 소득 수준 향상에 따른 식생활 패턴이 변화하였음에도 재래시장의 시설, 업종, 상품 구성 및 판매 방식이 소비자의 구매 방식에 따르지 못하는 데 있다. 이와 함께 시내 중심가의 인구가 시 외곽 지대에 있는 아파트 밀집 지역으로 이전함에 따라 시내 중심가의 상주인구가 감소하였다. 도심에는 대형 백화점이나 쇼핑센터가 발달하여 백화점 지하층이 전통시장을 대신하여 갔다. 외곽 아파트 단지 부근에는 새로운 형태의 대형 슈퍼마켓이나 체인 스토어가 발달하여 소비자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고 있다.
1990년대 들어서면서 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방안이 제시되었다. 1995년 9월 시장재개발·재건축과 관련하여 「중소기업 구조개선 및 경영안정 지원을 위한 특별조치」가 제정되었으며, 2006년 4월 「전통시장 및 상점가 육성을 위한 특별법」과 「유통산업발전법」이 제정되었다. 이를 근거로 ‘전통시장 지원정책’을 수립·지원하였다. 경영혁신 및 공동사업, 시장 관리 및 점포 경영 현대화, 시설 현대화 사업, 지역 상권 활성화 지원 등이다.
[현황]
서문시장, 칠성시장, 서남신시장, 팔달시장, 관문시장 등은 시장의 특성에 맞는 특성화 전략으로 활기를 되찾고 있다. 그러나 1970~1980년대 주택단지로 개발되면서 설립된 근린생활형 소형시장들 중 전통시장으로서의 기능을 상실한 시장은 다른 방안을 강구하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