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35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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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國際-工業社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노광 |
설립 시기/일시 | 1946년 3월 -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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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칭 시기/일시 | 1980년 -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에서 국제광학으로 개칭 |
최초 설립지 |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 -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 |
성격 | 제조업체 |
설립자 | 김재수 |
[정의]
대구광역시 북구 침산동에 있었던 안경테 제조업체.
[변천]
한국 안경 제조의 시발점은 고(故) 김재수 회장이다. 1930년대 후반 일본 최대의 안경 생산업 기지인 후쿠이현에서 안경테 제조 기술을 익힌 김재수는 삼형제와 함께 금곡셀룰로이드공업사를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41년 태평양전쟁이 발발하자 안경 공장들이 폐쇄되고 군수품 공장으로 전환되었다. 일본의 패망을 직감한 김재수는 한국에서 군수품을 만들겠다며 일본 관청의 허락을 받아 1945년 3월 기계와 원자재를 갖고 고향인 경상북도 선산으로 이전하였다.
광복 이후 안경을 구할 길이 없던 터라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였다. 원자재가 바닥 나자 서울로 진출하여 ‘인조피혁’이라는 셀룰로이드 재생 공장에서 원자재를 공급받으려 하였지만 인조피혁 공장 화재로 인하여 1946년 3월 대구시 침산동으로 옮겨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를 설립하게 된다. 그 당시 대구는 도금업 등 다른 생산 시설이 잘 갖추어져 있었고, 육상교통의 요충지였으며, 당시 침산동 지역은 허허벌판이라 땅을 구하기가 비교적 수월하였다.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 설립 초기에는 생산 인원도 적었고, 가내 수공업 수준이었지만 안경 수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공장이었다. 또한 뛰어난 기술력이 뒷받침되어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성장할 수 있었다. 특히 안경 산업은 생산 공정이 280여 개로 구분되기 때문에 세분화된 공장들이 점차 생겨나면서 침산동과 원대동 인근에 안경 생산 공장이 집적되었다.
1960년대로 접어들면서 국내 안경테는 디자인과 소재에 변화를 맞이하였으며, 합성수지에서 금속제 위주로 전환되었다. 이에 따라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도 생산 라인의 일부를 금속제 안경테로 전환하였고, 금속제 안경테는 국내 시장에 점차 보편화되기 시작하였다. 당시 김재수 회장은 안경 생산업체가 내수시장에만 급급할 것이 아니라 미래를 위하여 해외시장을 개척해야 한다고 판단하였다. 1960년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마침내 대구 최초로 홍콩에 3,000달러 규모의 안경테를 수출하게 되었다.
1960년대 이후 안경 산업은 정부의 경공업 지원 정책 및 노동집약적 산업 위주의 수출 주도 정책에 힘입어 매년 큰 폭으로 성장하였다.1968년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 김재수 회장은 안경 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산업포장을 받았다. 1970년 11월 말 기준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의 수출 실적은 30만 9400달러를 달성하였다. 1970년대 중반부터 안경 제조업체들이 연이어 설립되면서, 동시에 대형업체들이 생겨났고 고용증대 효과도 크게 나타났다.
1980년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상호를 ‘국제광학’으로 개칭하였으며, 에폭시 안경테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는 안경테 품질 수준이 전반적으로 향상되었고, 세계적인 소재 변화 추세에 맞추어 황동이나 청동 소재의 안경테에서부터 티타늄에 이르기까지 다양하였다. 이로 인하여 안경테의 품질 향상과 소재의 다각화는 이후 수출 경쟁력 강화를 위한 품목별 전문화 현상이 되었고, 국제광학은 금속 안경테를 전문화하였다. 1981년 안경 산업 전체 수출액은 1002만 7000달러이며 이 중 국제광학이 차지하는 비중은 32.2%인 323만 달러였다. 1986년 10월에는 전체 수출액 4958만 달러 중 국제광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4.3%인 212만 달러를 기록하였다. 이처럼 한국 안경 산업에서 국제광학이 차지하는 위상은 점점 하락하였으며,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의의와 평가]
국제셀룰로이드공업사는 안경 업계의 사관학교에 비유될 정도로 그 의미가 크다. 삼성광학 김지환 회장이 국제셀룰로이드 생산반장과 공장장 등을 지냈고, 대동광학 김태동 회장도 국제셀룰로이드 총무과장과 상무 출신이다. 일본 메이지대학교 출신 엘리트로 한때 서전과 함께 국내 안경 시장을 양분하던 한서안경 신현호 회장 역시 국제셀룰로이드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이다. 진흥셀룰로이드 윤진배 사장도 국제셀룰로이드 공장장을 역임하였다. 2세대로 분류되는 안경인들의 상당수도 국제셀룰로이드의 그늘을 벗어날 수 없었다. 한양대학교 공과대학 출신의 삼양공업 장태원 사장[공장장 출신], 한국안경패션산업협회 회장을 맡고 있는 시선 장지문 사장[무역부], 티타늄 제조에서 선두 주자로 분류되는 프레임웍스 김휘배 사장[독일 현지법인], 제일광학 전규원 사장[무역부] 등이 손꼽히는 국제셀룰로이드 출신 인맥이다. 국제셀룰로이드 김재수 회장은 한국 안경 산업의 발전에 주춧돌 역할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