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9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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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丁八鎭 |
영어공식명칭 | Jung Paljin |
이칭/별칭 | 정덕진(丁德鎭)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장세윤 |
출생 시기/일시 | 1897년 1월 9일 - 정팔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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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21년 - 정팔진 대한민국임시정부 독립공채 모집 참여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1월 - 정팔진 일제 경찰에게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23년 3월 - 정팔진 대구지방법원에서 징역 2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77년 4월 24일 - 정팔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977년 - 정팔진 대통령표창 추서 |
추모 시기/일시 | 1990년 - 정팔진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
출생지 | 성당동 -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 |
거주|이주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활동지 | 대구 - 대구광역시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개설]
정팔진(丁八鎭)[1897~1977]은 1897년 1월 9일 지금의 대구광역시 달서구 성당동에서 태어났다. 대구에서 농업에 종사하던 중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덕진(丁德鎭)으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1920년 8월 대구 출신의 이현수(李賢壽)는 대한민국임시정부 경북교통사무특파원에 임명되어 고향으로 돌아와 독립공채 모집 활동을 펼쳤는데, 정팔진은 김봉도(金奉道)·백군언(白君言) 등과 함께 이에 동참하였다.
정팔진 등은 독립운동 자금 모금을 위한 경고문을 비롯하여 물품 불구매 고지서, 납세 거절 협박문, 각종 포고문,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독립공채 모집에 관한 인정서 등을 인쇄하여 경상북도 관내 한국인 군수·면장 등과 부호들에게 우송하는 한편, 한밤중에 대구 시내의 한국인 가게 앞과 거리에서 독립운동 문건을 뿌리기도 하였다. 특히 임원조(林元祚)를 영천군 교통사무지국장, 이상철(李相澈)을 달성군 교통사무지국장, 박기석(朴奇石)을 안동군 교통사무특파원으로 임명하고 독립공채 모집에 노력하였다.
정팔진은 이현수·김봉도·백군언·서장환(徐章煥)·곽종해(郭鍾海) 등과 함께 1921년 11월부터 1922년 2월까지 미국에서 열리는 워싱턴 군축회의에 맞추어, 대구·평양·전주·부산 등지에 거주하는 외국인들에게 조선 독립 청원과 지지를 요청하는 영문 책자를 우송하였다. 정팔진은 1923년 1월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었고, 1923년 3월 대구지방법원에서 「제령 7호」 및 「출판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팔진은 1977년 4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정팔진의 공적을 기려 1977년 대통령표창,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