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98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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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鄭雲用 |
영어공식명칭 | Jung Unyong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인물(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 출신의 경제인.
[개설]
정운용(鄭雲用)[1904~1963]은 1904년 지금의 대구광역시에서 아버지 정응원(鄭應源)[1885~1933]과 어머니 김인아(金仁俄) 사이 맏아들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정재학(鄭在學)[1858~1940]이다. 일제강점기 대구의 자본가로서 일본 유학 후 귀국하여 경상합동은행의 대표이사 겸 회장을 역임하였다. 소화식산주식회사, 대구약조양조주식회사 등을 운영하고 여러 주식회사에 자본을 투자하였다.
[활동 사항]
정운용은 일본 니혼[日本] 대학 법학과, 메이지[明治] 대학 법학과로 유학을 다녀왔다. 이후 1928년 경상합동은행의 이사 및 업무과장을 겸직하면서 경제계에 첫발을 디뎠다. 정운용은 할아버지 정재학이 1940년 4월 2일 사망한 뒤 1940년 4월 27일에 열린 경상합동은행의 이사회에서 대표이사 겸 회장에 취임하였다. 1941년 7월 총독부는 「재정금융기본방책요강」을 발표하여 금융기관 정리 통합 방침을 밝혔다. 이에 경상합동은행은 일본계의 대구상공은행과의 합병설이 제기되었으나 1941년 8월 10일 서울의 한성은행과 합병계약을 체결하고, 9월 30일 흡수 합병되었다. 정운용은 한성은행의 상무이사가 되었고, 한성은행 주식 1,220주를 소유하는 것으로 경상합동은행의 명맥을 이었다. 정운용은 해방 이후 미군정과도 유대를 돈독히 가져 조흥은행의 은행장이 되었다.
정운용은 1932년 자본금 5만 원으로 금융 대부업과 부동산·유가증권 매매를 주요 업종으로 하는 소화식산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이사가 되었다. 1933년 구룡포전기주식회사에 자본을 투자하였고 1937년에는 대구약조양조주식회사 및 조선약업주식회사 등에 경영진으로 참여하였다. 1938년 경북무진주식회사, 대구합동택시주식회사, 경북일산자동차주식회사 등에 자본을 투자하고, 중역으로 활동하였다.
정운용은 1963년 10월 24일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