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28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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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陸史 |
영어공식명칭 | Lee Yuksa |
이칭/별칭 | 이원록(李源綠),이원삼(李源三),이활(李活)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문학,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류덕제 |
[정의]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이자 민족시인.
[개설]
이육사(李陸史)[1904~1944]는 1904년 4월 4일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진성(眞城)이며, 원래 이름은 이원록(李源綠) 또는 이원삼(李源三)이다. 이활(李活)로 이름을 고쳤다. 일제강점기 1920년 보문의숙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21년 대구의 교남학교[현 대륜고등학교]에서 수학하였다. 1930년 『조선일보』에 시 「말」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활동 사항]
이육사는 1925년 독립운동 단체 의열단에 가입하여 중국 베이징을 드나들면서 독립투쟁을 벌였다. 1925년 조양회관(朝陽會館)에서 애국지사들과 함께 신문화 강좌를 개설하였다.
이육사는 1926년 귀국하여 『문예운동』 창간호에 시 「전시(前時)」를 발표하였으며, 1927년 조선은행 대구지점 폭파 사건에 연루되어 3년 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29년 출옥하여 1930년 베이징대학 사회학과를 다녔으며 1933년 귀국하여 창작 활동을 이어 갔다. 1932년 김원봉이 교장으로 있는 난징의 조선혁명군사정치간부학교[조선군관학교]에 입교하여 1933년 4월 23일 6개월 과정을 수료하였다.
이육사는 1934년 『신조선』 근무를 비롯하여 『중외일보』, 『조광』, 『인문』 등 언론기관에 종사하면서 시, 한시, 시조, 논문, 평론, 번역, 시나리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창작을 하였다. 1937년 신석초·윤곤강·김광균 등과 동인지 『자오선』을 발간하였으며, 1941년까지 주로 『조광』, 『풍림』, 『문장』, 『인문평론』 등 잡지에 시를 지속적으로 발표하였다.
이육사는 1943년 베이징에서 귀국하였으나 6월에 일본 경찰에 피검되어 베이징 감옥에 수감 중 1944년 1월 16일 옥사하였다.
[저술 및 작품]
이육사의 주요 저서는 1935년 『신조선』에 발표한 시조 「춘추삼제(春秋三題)」와 시 「실제(失題)」, 「청포도」, 「교목」, 「파초」 등이 있다.
[상훈과 추모]
이육사는 1990년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