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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구
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2605
한자 金鉉九
영어공식명칭 Kim Hyeongu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인물(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일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937년연표보기 - 김현구 출생
수학 시기/일시 1960년 - 김현구 대구대학교 수학
활동 시기/일시 1960년 6월 20일 - 김현구 경북피학살자유족회 가입
출생지 오전리 -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
학교|수학지 대구대학 - 대구광역시 지도보기
활동지 대구 - 대구광역시
성격 사회운동가
성별 남성
대표 경력 대구유족회청년학생위원

[정의]

대구에서 활동한 사회운동가.

[개설]

김현구(金鉉九)[1937~?]는 1937년 지금의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오전리에서 태어났다. 대구대학교 법과 3학년에 재학 중 경북피학살자유족회 대의원 및 대구유족회 청년학생위원으로 활동하였다.

[활동 사항]

김현구는 1960년 6월 20일 경북피학살자유족회에 가입하였다. 이원식·이삼근·이복영·이효철 등과 함께 경북지구피학살자합동위령제준비위원회를 구성하고, 1960년 7월 28일 대구역 광장에서 유족 및 일반 시민 약 2,000명이 운집한 가운데 경북지구피학살자합동위령제를 개최하고 위령제 발기 취지문을 낭독하였다. 10월 말경 김현구이원식·이복영·권중락·이효철 등과 함께 경주지구유족회와 군경유가족회 간에 충돌이 발생하자 경주지구유족회를 지원하기 위하여 경북피학살자유족회원 60여 명을 인솔하고 경주에 가서 군경유가족회원과 경찰에 항의하고 돌아왔다. 1960년 11월 13일 경주시 월성국민학교에서 경주지구유족회 주최로 거행된 합동위령제에 경북피학살자유족회원 약 50여 명을 인솔하여 참가하였다.

김현구권중락·이복영 등과 함께 이대악법반대운동을 전개할 것을 결의하였다. 1961년 3월 14일 사회당 경북도당 사무실에서 각 혁신정당 및 사회단체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최된 이대악법반대경북정당사회단체노동단체학생단체공동투쟁위원회 결성대회에 경북피학살자유족회 대표로 참가하여 동원부원에 선임되었다. 김현구는 1961년 3월 21일 대구역 광장에서 열린 이대악법반대대구궐기대회에 경북피학살자유족회 회원들과 함께 ‘상기하라 대학살, 철회하라 이대악법’이라고 적힌 현수막을 들고 참석하였다.

경북피학살자유족회는 5·16 군사 쿠데타 이후 구성된 국가재건회의가 국회와 지방의회, 15개 정당, 238개의 사회단체를 해산할 때 강제 해산되었다. 김현구는 쿠데타군에게 체포되어 혁명재판소에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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