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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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西區 社稷壇 |
영어공식명칭 | Seo-gu Sajikdan|Seo-gu Sajikdan Altar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1314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민선례 |
원소재지 | 서구 사직단 -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1314번지 일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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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사직단 |
[정의]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일대에 있었던 조선 전기 대구부의 사직단.
[개설]
서구 사직단(西區社稷檀)은 정확한 건립 연대와 위치가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조선 후기에 지금의 대구광역시 서구 평리동 일대에 세워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사직단이다.
[건립 경위]
사직단은 토지신인 국사신(國社神)과 곡물신인 국직신(國稷神), 두 신에게 나라의 평안과 풍년을 기원하는 사직제(社稷祭)를 드리고자 단을 쌓고 제사를 지내는 곳을 일컫는다. 사직단의 기원은 중국인데, 전국시대 이전부터 토지와 농업을 맡은 신을 존중하였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삼국시대부터 사직단을 세웠으며 조선시대까지 그대로 이어져 왔다. 옛 기록을 보면, 현재의 대구광역시 지역에는 세 곳에 사직단이 있었던 것으로 전한다. 조선시대의 대구부에 속하는 평리동과 경산현에 속하는 노변동, 그리고 현풍현에 속하는 현풍읍, 이렇게 세 곳이다. 평리동에 있었던 서구 사직단은 옛 기록들로 미루어 보건대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위치]
서구 사직단의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평리동 일대에 사직단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구전되는 상태이다. 2008년도 대동문화재연구원에서 진행한 신평리주공아파트 주택 재건축 부지에 대한 발굴조사와 대구 지역 향토사학자들의 연구를 종합하여 보면 서구 사직단의 위치는 평리4동 1314번지 일대로 추정된다.
[역사적 관련 사항]
서구 사직단에 대한 문헌 기록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與地勝覽)』, 『여지도서(輿地圖書)』, 『대구읍지(大邱邑誌)』, 『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영남읍지(嶺南邑誌)』 등에서 확인되지만, 사직단의 구체적인 위치나 규모 등은 알 수 없다. 또한 서구 사직단이 언제 축조되었지는 알 수 없지만, 1530년 무렵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사직단의 존재가 확인되므로 대구가 도호부로 승격되는 1466년 이전에는 서구 사직단이 만들어졌을 것으로 생각된다.
[현황]
서구 사직단은 1918년에 발행된 지형도에도 건물들이 표기된 것으로 보아 이때까지도 사직단이 존재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1973년 촬영된 항공사진에서도 서구 사직단 주변은 숲으로 조성되어 있었지만, 1975년 이후 도시 구획이 이루어지면서 사직단 주변 지역이 본격적으로 개발되었고, 이후 파괴된 것으로 추정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