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90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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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山齋 |
영어공식명칭 | Deoksanjae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천을로 39-4[시지동 75]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전일주 |
건립 시기/일시 | 1917년 - 덕산재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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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978년 - 덕산재 중수 |
현 소재지 | 덕산재 - 대구광역시 수성구 천을로 39-4[시지동 75] |
성격 | 재실 |
양식 | 맞배지붕 목조 와가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아산장씨 문중 |
관리자 | 아산장씨 문중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시지동에 있는 장자원을 추모하는 재실.
[개설]
덕산재(德山齋)는 장자원(蔣自元)[?~?]이 부모의 묘소 옆에 임시로 집을 짓고 사모하는 정을 나타내던 곳이다. 장자원의 본관은 아산(牙山)이며, 자는 성인(性仁), 호(號)는 덕봉(德峰)이다. 감찰 장간(蔣芉)의 아들이며, 성종 때 생원시에 합격하여 한성부참군을 지냈다. 일찍이 덕행과 효행으로 사림들의 추앙을 받았으며, 대덕산 밑에서 은거하며 점필재(佔畢齋) 김종직(金宗直)[1431~1492]과도 교유가 있었다.
[위치]
덕산재는 수성구 시지동 75에 있다.
[변천]
덕산재는 1740년(영조 17) ‘곡계정사(曲溪精舍)’라는 현판을 걸고 문중 서당으로 이용되다가 1870년(고종 7) 장해붕(蔣海鵬)이 대흥동으로 이건하여 ‘이로재(履露齋)’로 이름을 바꾸었다. 1917년 현 위치로 다시 이건하면서 ‘덕산재’라고 편액하였으며, 1978년 한 차례의 중수가 있었다.
[형태]
덕산재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맞배지붕을 얹은 목조 기와집이다.
[현황]
덕산재는 관리인이 거주하고 있으며, 문중에서 잘 관리하고 있다. 덕산재 뒤편 50m 지점에 덕봉선생 장공 유허비각(德峰先生蔣公遺墟碑閣)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