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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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梨泉洞 - |
이칭/별칭 | 이천동 지석묘군,구 대봉동 고인돌[지석묘],신천 좌안의 고인돌[지석묘군],신천 유역의 고인돌[지석묘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
시대 | 선사/청동기 |
집필자 | 민선례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27년 - 대구 이천동 고인돌 고이즈미 아키오에 의하여 제2구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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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6년 9월 - 대구 이천동 고인돌 고이즈미 아키오에 의하여 제2·3구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6년 10월 - 대구 이천동 고인돌 후지타 료사쿠와 가야모토 가메지로에 의하여 제4구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38년 11월 - 대구 이천동 고인돌 후지타 료사쿠와 가야모토 가메지로에 의하여 제1구와 제5구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0년 7월 16일~8월 20일 - 대구 이천동 고인돌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이천동 고인돌 제4구 Ⅰ·Ⅲ지석묘에 대한 재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3년 10월 28일~11월 19일 - 대구 이천동 고인돌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이천동 297-1번지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7년 8월 11일~9월 30일 - 대구 이천동 고인돌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이천동 고인돌 제5구에 대한 재조사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10년 11월 6일~11월 20일 - 대구 이천동 고인돌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대구도시철도 3호선 건설부지 내 대구 이천동 308-10번지 유적 발굴 조사 |
소재지 | 대구 이천동 고인돌Ⅰ -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308 일대 |
소재지 | 대구 이천동 고인돌Ⅱ·Ⅲ - 대구광역시 남구 대봉로 176[이천동 299-2] 일대 |
소재지 | 대구 이천동 고인돌Ⅳ - 대구광역시 남구 대봉로 162[이천동 297-1] 일대 |
소재지 | 대구 이천동 고인돌Ⅴ -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238-6 일대 |
성격 | 고분 |
양식 | 고인돌 |
[정의]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
[개설]
대구 이천동(大邱 梨泉洞) 고인돌[지석묘]은 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일대에 있었던 청동기시대 고인돌이다. 5개의 고인돌 무리가 대구를 관통하는 신천의 자연제방 위에 일렬로 분포하고 있어 ‘신천 좌안의 고인돌’ 또는 ‘신천유역의 고인돌’로 불린다. 1927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가 북쪽에서부터 ‘대봉정(大鳳町) 지석묘’ 제1구에서 제5구로 소개하였으며, 현재는 남구 이천동에 속하게 되어 ‘이천동 고인돌’로 불리고 있다.
[위치]
대구 이천동 고인돌은 대구도시철도 3호선의 대봉교역과 건들바위역 사이에 있는 대봉네거리에서 남쪽의 캠프헨리 동쪽 담을 따라 대구중학교 쪽으로 진행되는 대봉로를 따라 도로의 우측에 열을 지어 있었다. 대구 이천동 고인돌Ⅰ[대구광역시 남구 이천동 308번지 일대]은 대봉네거리의 도로 중앙에 해당된다. 대구 이천동 고인돌Ⅱ·Ⅲ[이천동 299-2번지 일대]은 대구 이천동 고인돌Ⅰ의 남쪽으로 60m 정도 떨어져 나란하게 있었으며, 이전에 봉덕전화국 하치장이 있었던 자리로 현재 상가와 주택이 있다. 대구 이천동 고인돌Ⅳ[이천동 297-1번지 일대]은 대구 이천동 고인돌Ⅱ의 남쪽으로 9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현재 상가주택이 들어서 있다. 대구 이천동 고인돌Ⅴ[이천동 238-6번지 일대]는 대구 이천동 고인돌Ⅳ의 남쪽으로 270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이천주공아파트 입구부 주변에 해당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이천동 고인돌에 대한 조사는 1927년 고이즈미 아키오[小泉顯夫]에 의하여 대구 이천동 고인돌 제2구에 대한 발굴 조사로 시작되었다. 이후 1936년 9월 대구 이천동 고인돌 제2·3구가 있는 곳에 일선만전화연락중계소(日鮮滿電話連絡中繼所)를 세우면서 5기의 고인돌이 옮겨지고 파괴되는 사건이 일어나 총독부에서 즉시 공사를 중단시키고 가야모토 가메지로[榧本龜次郞]가 제2·3구를 조사하였다. 1936년 10월 후지타 료사쿠[藤田亮策]와 가야모토 가메지로는 고적연구회(古蹟硏究會)의 사업으로서 제4구를 발굴 조사하였고, 1938년 11월 제1구와 제5구를 조사하였다.
경북대학교 박물관에서 제4구에 대한 재조사를 두 차례에 걸쳐 진행하였다. 1990년 7월 16일부터 8월 20일까지 진행한 1차 조사에서 대봉동 제4구의 Ⅰ·Ⅲ지석묘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였고, 1993년 10월 28일부터 11월 19일까지 대봉동 제4구와 접한 이천동 297-1번지 일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진행하여 석관묘 5기와 근대의 건물지, 우물 2기가 확인되었다.
영남대학교 박물관에서 1997년 8월 11일부터 9월 30일까지 제5구에 대한 재조사를 실시하였고, 이동된 것으로 보이는 고인돌 덮개돌[상석] 1기와 청동기시대 돌널무덤[석관묘] 10기가 조사되었다. 대구도시철도 3호선 건설부지 내 대구 이천동 308-10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010년 11월 6일부터 11월 20일까지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돌널무덤 3기가 조사되었고, 그중 석관묘 1호가 1938년 조사된 ‘구 대봉동지석묘군 제1구’ 내 가장 북서편에 있는 석실(石室)로 표기된 유구로 밝혀졌다.
[발굴 조사 내용]
일제강점기 발굴 조사에서는 제1구에서 덮개돌 아래 천석만 깔려 있는 고인돌1기와 석곽형 돌널무덤[석관묘]이 확인되는 고인돌 1기가 확인되었고, 고인돌 주변에서 석곽형 돌널무덤 1기가 조사되었다. 돌널무덤에서는 돌칼 1점과 돌화살촉 3점, 붉은간토기 1점이 출토되었다. 제2구에서는 고인돌 덮개돌 3기에 석곽형 돌널무덤 5기가 조사되었고, 간돌칼 2점과 돌화살촉 5점이 출토되었다. 제3구에서는 고인돌 덮개돌 3기와 석곽형 돌널무덤 4기가 조사되었다. 제4구에서는 3기의 고인돌이 있었다. 3기의 고인돌 중 제Ⅲ고인돌 부근에서 확인되는 고인돌의 덮개돌이 가장 큰 것이었는데, 1936년 발굴 조사 후에도 계속 남아 있어 대구 이천동 고인돌의 상징으로 꼽혔다. 제1고인돌 아래에서 돌널무덤 4기가, 제2고인돌 아래에서는 돌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다. 제3고인돌의 덮개돌 아래에서는 4개의 지석이 확인되었고, 지석 아래에서는 돌널무덤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덮개돌 주변에서는 2기의 돌널무덤이 확인되었다. 제5구에서는 3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지만, 제1고인돌만 발굴 조사하였다. 고인돌의 덮개돌 주변에서 석곽형 돌널무덤 1기가 확인되었고, 무덤 바닥에서 돌화살촉 1점이 출토되었다.
광복 후에도 발굴 조사는 이어졌다. 제1구에 대한 2010년 발굴 조사에서는 청동기시대 석곽형 돌널무덤 3기가 조사되었는데 1호묘가 1938년 조사된 ‘구 대봉동지석묘군 제1구’ 내 가장 북서편에 있는 석실(石室)로 표기된 유구로 밝혀졌다. 1990년 진행된 제4구에 대한 재조사 결과 일제강점기 조사 보고문의 남북 방향이 도치된 오류를 확인하고 주변에서 수기의 돌널무덤을 더 발견하는 등 일제강점기 발굴 조사에 대한 재검토의 필요성을 환기시켰다. 제4구의 제Ⅰ지석묘는 1기의 덮개돌 주변에 5기의 무덤이 卍자형으로 있으며, 무덤 주변에는 강돌을 깔아 묘역을 만들었다. 제Ⅲ고인돌은 무게 40t이나 되는 큰 덮개돌을 4개의 고임돌[지석] 위에 올려놓은 남한 지방의 전형적인 고인돌이며, 주변에 4기의 돌널무덤이 배치되어 있었다. 덮개돌이 없는 주변에서 5기의 돌널무덤이 확인되었고, 돌화살촉 11점, 관옥 44점, 민무늬토기편 등이 출토되었다. 1993년 제4구와 인접한 이천동 297-1번지에 대한 발굴 조사를 하여 고인돌의 하부구조로 생각되는 돌널무덤 5기와 근대의 건물지, 우물 2기가 확인되었고, 간돌칼 1점과 돌화살촉 7점이 출토되었다. 돌널무덤 중 1기는 1936년 조사되었던 제4구 Ⅲ-1호 무덤이다. 1997년 발굴 조사 당시 제5구에는 고인돌 덮개돌 1기가 반쯤 묻힌 채 남아 있었다. 조사 결과 고인돌과 관련된 돌널무덤 10기와 인골 2기가 출토된 민묘 2기가 확인되었다.
[현황]
대구 이천동 고인돌Ⅰ인 이천동 308-10번지 유적에서 조사된 돌널무덤은 모두 국립대구박물관 내 유적공원으로 옮겨 복원 전시하였고, 대구 이천동 고인돌Ⅳ와 대구 이천동 고인돌Ⅴ에 대한 재조사 이후 덮개돌과 돌널무덤 일부를 각각 경북대학교 박물관과 영남대학교 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교육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이천동 고인돌은 신천 주변에 남북 방향으로 길게 열을 지어 분포하는 청동기시대 무덤으로 대구 지역뿐 아니라 우리나라 고인돌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이다. 1927년 조사된 대구 이천동 고인돌에 대한 발굴 조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고인돌 발굴 조사이지만, 일제강점기 조사된 내용과 1990년 이후 재발굴 조사된 고인돌의 조사 내용과 비교하였을 때 상당 부분 차이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그러므로 일제강점기 발굴 조사가 실시되었던 경우라 하더라도 재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된다. 대구 이천동 고인돌 주변 일대에 청동기시대 유적이 분포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