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8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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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 旭水洞 慶山 玉山洞 遺跡 |
영어공식명칭 | Daegu Siji-dong Yujeok2|Archaeological Site 2 in Siji-dong, Daegu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48-1|경상북도 경산시 중산동 234|중산동 235 |
시대 | 고대/삼국 시대 |
집필자 | 김병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1998년 11월 1일~12월 31일 -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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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0년 9월 20일~2001년 10월 31일 -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
원소재지 |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 -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 48-1 일대 |
원소재지 |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 - 경상북도 경산시 중산동 234·235 일대 |
성격 | 가마 유적 |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욱수동과 경상북도 경산시 옥산동에서 발굴 조사된 삼국시대 토기 가마 유적.
[개설]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은 대구광역시 수성구 삼덕동~시지 택지 간 도로 건설과 관련하여 1998년 11월 1일부터 1998년 12월 3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1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고, 노인 전문 병원 신축과 관련하여 2000년 9월 20일부터 2001년 10월 31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2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였다. 1차 조사 결과 삼국시대 토기 가마 3기와 돌방무덤 1기가 확인되었고, 토기류와 토제품 등 131점이 출토되었다. 2차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집자리 3기, 삼국시대 토기 가마 38기, 토기 가마와 관련된 수혈·폐기장·도랑 유구 73기, 돌방무덤 18기, 돌덧널무덤 3기, 토광묘 1기, 고려시대 및 조선시대 토광묘 457기, 조선시대 독무덤 2기, 매납 유구 2기가 확인되었고, 토기류·자기류·금속기류·토제품 등 2,226점이 출토되었다.
[위치]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은 남쪽 성암산[472m]에서 북쪽으로 길게 뻗어 내린 능선의 말단부에 위치한다. 서쪽으로는 욱수천이 북쪽으로 흐르고 있으며, 욱수천 변에는 고산 선상지로 불리는 넓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을 비롯하여 대구 시지지구 삼국시대 유적 등 많은 유적이 조성되어 있다.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이 있는 능선 북쪽에는 중산동 고분군Ⅰ, 남쪽에는 중산동 고분군Ⅱ가 있다.
[형태]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에서 토기 가마는 41기가 조사되었고, 토기 가마와 관련된 배수로·폐기장·채토장·수혈·기둥 구멍 등이 확인되었다.
가마는 구릉 경사면을 굴식으로 굴착하여 축조한 지하식, 지표를 일정 깊이로 수직 굴착하여 바닥을 마련하고 벽체의 일부나 천장을 지상에 노출되게 축조한 반지하식, 선축된 가마가 폐기되어 매몰된 후 그 면을 정지하여 축조한 지상식의 구조가 확인되었다. 가마의 형태는 연소실과 소성실의 너비가 비슷하며 폭이 좁고 긴 세장형과 장방형 또는 타원형 소성실에 연소실의 폭이 좁혀진 형태로 구분된다. 가마는 사면 아래쪽에 아궁이가 있고, 뒤쪽으로 연소실·소성실이 별도의 구분없이 일직선상에 있는 단칸 구조이다.
가마와 폐기장에서 굽다리접시[高杯],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단지[甕], 손잡이 달린 사발[把手附碗], 뚜껑[蓋], 시루, 통 모양 그릇받침[筒形器臺], 바리 모양 그릇받침[鉢形器臺], 연질토기, 토우(土偶), 그물추[漁網錘], 흙구슬[土球] 등의 토제품과 장고 모양, 굽다리 모양, 고리 모양 등의 다양한 형태의 도지미가 출토되었다. 시지지구 토기 가마는 4세기 후반에서 6세기 전반에 걸쳐 운영된 당시 지역 최대 규모의 토기 생산 유적이다. 여기서 생산된 토기들은 지역 최고 수장층 고분군이 있는 경산 임당고분군을 비로하여 시지지구 각 고분군과 취락에 공급되었다.
[현황]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은 발굴 조사 완료 후 도로가 개설되고 노인 전문 병원이 신축되었다. 대구 시지지구 삼국시대 유적 및 대구 노변동 고분군과의 관례를 고려한 학술적 중요성으로 인하여 상태가 양호한 36호, 38호 등 6기의 토기 가마는 현지에 정비·보존하였고, 1기는 전시 교육용으로 국립대구박물관으로 이전 복원하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 욱수동·경산 옥산동 유적은 4세기 후반부터 6세기 전반에 걸쳐 조업된 토기 가마 유적으로서 당시 대구광역시와 경상북도 경산시 지역 최대 규모의 토기 생산 유적이며,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대표적인 토기 생산 유적이다. 토기 가마의 구조, 토기 생산 공방의 형성과 변천은 물론, 토기 가마에서 생산한 토기들이 해당 지역 최고 수장층 고분군과 취락이 있는 경상북도 경산시의 임당지구를 비롯하여 대구광역시 수성구의 시지지구 및 가천지구 등의 고분군과 취락에 주로 공급됨으로써 당시 토기의 생산과 유통 관계를 연구하는 데 중요한 유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