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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840
한자 大邱 新梅洞 遺跡二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고분
지역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로4안길 35[신매동 607]|고산로4안길 46[신매동 608]
시대 고대/삼국 시대
집필자 김병섭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 시기/일시 삼국시대 - 대구 신매동 유적2 조성
발굴 조사 시기/일시 1996년 7월 25일~1997년 5월 20일 - 대구 신매동 유적2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
소재지 대구 신매동 유적2 - 대구광역시 수성구 고산로4안길 35[신매동 607]|고산로4안길 46[신매동 608]지도보기
성격 생활 유적

[정의]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에 있는 삼국시대 고분군.

[위치]

대구 신매동 유적2(大邱新梅洞遺跡二)가 있는 대구광역시 수성구 신매동성암산[472m], 안산[470m] 사이를 개석(開析)하여 흐르는 욱수천에 의하여 형성된 고산 선상지의 선앙과 선단부에 해당된다. 고산 선상지에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유적과 마을 유적, 삼국시대 생활 유적이 대규모로 확인되었고, ‘대구 고산 지역 유적’으로도 총칭되고 있다. 대구 신매동 시지지구 생활 유적도 대구 고산 지역 유적의 분포 범위에 포함되어 있다. 대구 신매동 유적2의 위치는 욱수천 서안의 충적지와 남서쪽의 구릉 말단부가 이어지는 곳이며, 동쪽으로 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유적이 다수 조사되었고, 서쪽의 구릉 사면에는 삼국시대 노변동 고분군이 있다. 신매동 607번지, 608번지에 해당한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대구 신매동 유적2는 시지택지개발사업에 앞서 1996년 7월 25일부터 1997년 5월 20일까지 영남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 조사하였다. 조사 결과 삼국시대 생활 유적 일부와 구덩식돌덧널무덤[竪穴式石槨墓] 195기, 앞트기식석실묘[橫口式石室墓] 13기, 굴식돌방무덤[橫穴式石室墓] 29기, 독무덤[甕棺墓] 13기, 기타 유구 25기의 합계 257기가 조사되었고, 토기류와 철기류, 장신구류 등 4,608점의 유물이 출토되었다.

[형태]

대구 신매동 유적2에서 돌덧널무덤은 195기가 조사되었는데, 2~3기 군집을 이루는 다곽식(多槨式)이다. 대부분 봉분이 유실되었고, 호석(護石)이나 주구(周溝)가 남아 있는 것은 15기이다. 돌덧널은 1단 벽석이 판석인 경우 세워쌓기[垂積] 후 위에 가로눕혀쌓기[橫平積]와 세로눕혀쌓기[縱平積]하였고, 1단이 깬돌[割石]이나 강돌[川石]인 경우 세워쌓기나 가로눕혀쌓기 후 위에 4~7단 정도 가로눕혀쌓기와 세로눕혀쌓기 하였다. 돌덧널 중에는 앞트기부분[橫口部]이 설치된 것도 있다. 바닥 시설은 굴광면을 그대로 이용한 것이 대부분인데, 강돌, 깬돌, 널돌[板石] 등을 이용하여 시상을 설치한 것도 있다. 돌방무덤은 앞트기식돌방무덤과 굴식돌방무덤으로 나누어진다. 돌방 주변에 주구가 확인된 것은 10기, 호석이 확인된 것은 3기이다. 돌방무덤에는 폐쇄석이 대부분 남아 있는데, 깬돌을 이용하여 세로 방향으로 여러 매 쌓았다. 돌방의 벽석은 깬돌과 강돌을 이용하여 눕혀 쌓거나 세워쌓기와 눕혀쌓기를 혼용하여 축조하였다. 돌방 내에 시상대가 확인되는데, 22기는 1차 시상대만 확인되었고, 18기는 2차 이상의 시상대가 확인되어 추가장(追加藏)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독무덤은 합구식(合口式)으로 연질독(軟質甕)이나 연질긴몸독[軟質長胴甕]이 가장 많이 사용되었고, 연질시루[軟質甑]나 연질발[軟質鉢], 연질손잡이달린항아리[軟質把手附壺]도 사용되었다. 13기의 독무덤 중 7기는 딸린 무덤으로 파악되며, 9기의 독무덤에는 토기가 부장되어 있다. 다른 매장 형태로 뚜껑돌나무널무덤[石蓋木棺墓]도 3기 확인되었다.

[출토 유물]

대구 신매동 유적2에서 출토된 유물은 토기류 3,973점, 금속류 728점, 기타 6점 합계 4,608점이 출토되었다. 토기는 뚜껑있는굽다리접시[有蓋高杯], 굽다리접시, 뚜껑, 뚜껑달린굽다리사발[有蓋臺附碗], 굽다리사발, 사발, 접시[杯], 손잡이잔[把手附杯], 짧은목항아리[短頸壺], 긴목항아리[長頸壺], 굽다리긴목항아리[臺附長頸壺], 굽다리곧은입항아리[臺附直口壺], 손잡이항아리[把手附壺], 바리, 독[甕], 시루 등이 있고, 금속류는 쇠손칼[鐵刀子], 쇠낫[鐵鎌], 쇠도끼[鐵斧], 쇠투겁창[鐵鉾], 쇠방울[鐵鐸], 미늘쇠[有刺利器], 재갈[銜], 발걸이[橙子], 교구, 말띠꾸미개[雲珠], 귀걸이[耳飾] 등이 출토되었다.

[현황]

대구 신매동 유적2는 발굴 조사 후 택지개발사업이 진행되어 원형을 찾아 볼 수 없다. 북쪽과 동쪽 충적지 대부분도 택지개발이 이루어져 아파트, 단독주택, 근린생활시설 등이 조성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대구 신매동 유적2시지지구 삼국시대 생활 유적 남서쪽 구릉지에 있으며, 노변동 고분군의 일부로 볼 수 있다. 유적 내 묘제는 구덩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덧널무덤, 앞트기식돌방무덤, 굴식돌방무덤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 시지지구에서는 삼국시대 대규모의 고분 유적과 생활 유적, 생산 유적이 함께 확인되어 당시 생활상 복원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해 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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