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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40001701
한자 觀風樓
영어공식명칭 Gwanpungnu|Gwanpungnu Pavilion
이칭/별칭 폐문루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유적/유적(일반)
지역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동 294]|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민선례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조성|건립 시기/일시 1601년연표보기 - 관풍루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2년 3월 4일연표보기 - 관풍루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
이전 시기/일시 1906년 - 관풍루 달성공원 내로 이전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6월 29일 - 관풍루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문화재 지정 번호 삭제
현 소재지 달성공원 -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공원로 35[달성동 294]지도보기
원소재지 경상감영 - 대구광역시 중구 경상감영길 99[포정동 21번지]지도보기
성격 관아|누각
양식 팔작지붕|정면 3칸|측면 2칸
소유자 대구광역시
관리자 대구광역시 중구
문화재 지정 번호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달성공원 내에 있는 누각.

[개설]

관풍루는 1601년(선조 34)에 경상감영이 대구 지역에 설치되면서 세워진 경상감영의 정문인 누각이다. 대구에 감영이 설치되면서 선화당(宣化堂)의 정남쪽에 포정문(布政門)을 세우고 포정문 위에 관풍루를 만들었다. 관풍루의 원래 명칭은 ‘폐문루(閉文樓)’였다. 주위에 북, 종, 피리, 나팔 등을 갖추어 놓고 매일 새벽 다섯 시와 밤 열 시가 되면 동서남북 네 개 성문을 열고 닫는 시간에 맞추어 풍악을 울렸다고 한다. 지금의 ‘관풍루’라는 명칭은 ‘관풍세속(觀風世俗)’[‘감사가 누각 위에서 세속을 살핀다’라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1975년 2월 5일 대구광역시 문화재자료 제3호로 지정되었다. 그 후 2021년 6월 2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개정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었다.

[위치]

관풍루는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포정동 21에 해당하는 경상감영 부지에 있다가, 1906년 지금의 대구광역시 중구 달성동 294에 해당하는 달성공원 내로 옮겼다. 달성공원의 정문으로 들어서서 우측으로 돌아가면 최제우의 동상이 있는데, 그 뒤편 돌계단 위의 높은 언덕 정상에 남향으로 설치되어 있다.

[변천]

1906년 당시 관찰사였던 박중양(朴重陽)대구읍성을 허물면서 관풍루 건물만 달성공원 내로 옮길 때 2층의 누각 건물만 남게 되었다. 관풍루 건물은 노후되어 1970년에 해체하였다가 1973년에 복원하였다.

[형태]

관풍루는 바닥에 벽돌을 깐 화강암 기단 위에 세워진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의 2층 누각이다. 네 개의 기둥 사이에 세 개의 대문이 달려 있었다고 전하지만, 현재 문은 없다. 1층은 통칸[집 안의 칸이 막히지 아니하고 서로 통하여 하나로 된 것]으로 남아 있으며, 뒤편으로는 계단을 만들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하였다. 2층에는 마루를 가설하여 난간을 설치하였다. 지붕은 옆에서 볼 때 팔자 모양인 겹처마 팔작지붕이며, 지붕의 내림마루[지붕면에 따라 경사져 내린 마루]에는 잡상(雜像)을 장식하였다. 2층의 구조는 5량가(五樑架)[종단면에 도리가 다섯 줄로 걸리는 가구 형식]이며, 천장은 연등천장이다.

[현황]

관풍루는 1906년 달성공원 내로 이전 건립될 때 대부분의 부재가 새것으로 교체되었으나 건축 당시의 양식을 유지하고 있으며, 보존 상태도 양호하다.

[의의와 평가]

관풍루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2층 누각 형식의 조선시대 읍성 문루라는 점에서 건물 자체만으로도 건축사적 가치가 있다. 다만, 경상감영의 정문이라는 건축 당시의 기능과 역할을 고려한다면 원래 위치인 경상감영의 정문으로 옮겨지는 것이 더욱 의미가 클 것이라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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