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3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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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日本居留民團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개항기 대구광역시에서 결성된 일본인 자치 단체.
[개설]
대구일본거류민단(大邱日本居留民團)은 1906년 11월 대구에서 거주 중이던 일본인들이 결성한 자치단체이다.
[설립 목적]
대구일본거류민단은 식민 통치기구인 대구이사청(大邱理事廳)의 감독 아래 대구에 거주하는 일본인들의 자치를 위하여 결성한 자치단체이다.
[변천]
대구일본거류민단은 대구일본인거류민회(大邱日本人居留民會)를 계승하여 1906년 11월에 결성되었으며, 1914년 4월 부제(府制) 실시에 따라 거류민단법(居留民團法)이 폐지될 때까지 대구에 거주 중인 일본인 사회의 자치단체로 운영되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일본거류민단은 1906년 12월 대구이사청 개청식 때 오카모도[岡本理平] 이사관으로부터 대구에 거류민단법을 실시한다는 발언 이후 설립되었다. 오카모토 리헤이[岡本理平] 이사관은 대구일본거류민단 설립 위원장에 가게야마 히데키[影山秀樹], 조역 겸 회계 위원에 도쿠라 주로쿠[戶倉十六]를 위촉하고, 쓰지야 히코지로[土屋彦次郞], 이즈미 스에지[泉末治], 후쿠나가 마사지로[福永德次郞], 오구라 다케노스케[小倉武之助], 후지이 만지로[藤井萬次郞], 무라카미 토모요시[村上知義], 스다 산페이[須田三平], 다도코로 유키에[田所幸衛] 등을 설립 위원으로 선정하였다.
1906년 12월 21일 대구일본거류민단의 민회 의원 선거가 치러졌다. 대구일본거류민단 회원들은 규슈[九州]의 후쿠오카[福岡] 출신이 1위, 주고쿠[中國]의 야마구치[山口] 출신이 2위, 혼슈[本州]의 오카야마[岡山] 출신이 3위, 혼슈와 주고쿠 사이인 히로시마[廣島] 출신이 4위 등의 순서로 많았다. 이처럼 대구에서 거주한 일본인들은 지리적 이동 조건, 곧 대구와 부산에 가까운 일본 지역 출신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대구일본거류민단의 구역은 대구 성내동(城內洞) 일원과 성 밖의 금호강(琴湖江), 만촌동(晩村洞), 황청동(黃淸洞), 동괘진(東掛津), 상리(上里)까지였다. 대구일본거류민단은 대구읍성(大邱邑城)의 철거, 대구도로위원회 활동, 경상감영(慶尙監營) 객사 철거, 시구 개정 사업 등을 통하여 전통 도시 대구를 해체하고 식민 도시로 전환하는 데 영향력을 발휘하였다. 또는 철도 용지를 임대받아 전대하여 자본을 축적하였다. 그리고 대구일본거류민단은 일본인 소학교 등 교육 사업과 소방조를 비롯한 자치 활동에 힘을 기울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일본거류민단은 대구이사청의 감독 아래 일본인의 자치를 위하여 활동하면서, 대구를 일본인의 도시로 재편하는 데 주요 역할을 담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