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125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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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邱勞動親睦會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대구광역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일수 |
[정의]
일제 강점기 대구광역시에 있었던 운수 노동자들의 노동 단체.
[개설]
대구노동친목회는 1925년 대구역을 중심으로 운수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하여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였다.
[설립 목적]
대구노동친목회는 대구역 일대의 운송 노동자를 규합하여 운수 노동자들의 친목과 이익을 옹호하기 위하여 설립된 노동운동 단체이다. 운수 노동자의 지위 향상, 생활 안정, 상호부조 등의 3원칙을 목적으로 하였다.
[변천]
대구노동친목회는 1923년 7월 신재모(申宰模), 김광서(金光瑞), 장춘옥(張春玉) 등이 운수 노동자 30여 명을 규합하여 설립한 운수노동자친목계를 기원으로 하였다. 운수노동자친목계는 1924년에 대구노동친목계로 바뀌었고, 대구노동친목계는 1925년 다시 대구노동친목회로 개칭되었다.
대구노동친목회는 주요 인물인 신재모, 우해룡(禹海龍)[일명 해운(海雲)] 등이 무정부주의 진우연맹(眞友聯盟) 사건으로 인하여 일제 당국의 탄압으로 투옥되면서 1926년 8월 김광서가 회장이 되었다. 집행위원제가 회장제로 변경되었던 것이다. 대구노동친목회는 1927년 5월 총회 결의로 회명을 대구노동회로 바꾸었다.
[주요 사업과 업무(활동 사항)]
대구노동친목회는 1925년 5월 24일 만경관에서 400여 명의 회원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그러나 일제 관헌의 간섭으로 우해룡의 축사가 금지되었다. 대구노동친목회는 집행위원제를 채택하였다. 대구노동친목회의 회원 자격은 대구역을 배경으로 한 육체노동자를 대상으로 하되 운송점 조합원 등에 소속되지 않은 개인으로 제한하였다. 대구노동친목회는 1925년 12월 운반부를 새로 설치하였다.
대구노동친목회는 운수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활동을 벌이는 가운데 1925년 말부터 1926년 초에 걸쳐 대구역 주변 운송점의 운반 임금이 제각각인 것을 파악하고 최고율로 동일임금을 지불할 것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였다.
[의의와 평가]
대구노동친목회는 대구역 운수 노동자를 대상으로 운수 노동자들의 권익 향상과 상호부조를 실행하여 노동운동의 고양에 이바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