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4000036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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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南一洞 |
영어공식명칭 | Namil-dong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권 |
[정의]
대구광역시 중구에 속하는 법정동.
[개설]
남일동(南一洞)은 대구광역시 중구 법정동 57개 중 하나이다.
본래 대구부 동상면 지역이었다. 동상면은 조선군 국궁부대를 관리하는 사청(射廳)이 존재하였던 곳이다. 활과 관련하여 생겨난 자연 마을인 사관바깥마와 사관안마의 남쪽 일부는 남일동, 동쪽 일부는 동성동이 되었다. 사관바깥마는 활을 쏘는 군사들을 관리하는 사관(射館)의 밖에 있는 마을이고, 사관안마는 사관의 안에 있는 마을이다.
남일동을 대표하는 자연 마을로는 진골목이 있다. 진골목은 대구 사투리로 ‘골목이 길다는’ 의미다. 화교들의 거리로 이름난 종로의 샛길[흥백원, 가창떡집]에서 시작하여 중앙시네마 뒷길을 따라 국일따로국밥식당 옆을 지나 옛 경상감영터인 경상감영공원으로 이어지는 길이다. 진골목은 조선시대부터 있었던 길로 근대화 과정에서 대구의 대표적인 부자촌으로 부상하기도 하였다. 진골목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대구 최고 자산가인 서병국(徐秉國)과 서병국의 일가들 그리고 부자들이 많이 살아 수백 평에 달하는 넓은 저택들이 있었다. 코오롱 창업자 이원만(李源万) 회장, 금복주 창업자 김홍식(金泓殖) 회장, 평화클러치 창업자 김상영 회장, 정치인이자 체육계 인사인 신도환(辛道煥) 전 국회의원 등이 살았다. 양반들은 큰길인 종로를 이용하여 경상감영으로 출입하였으나, 일반 서민들은 양반들을 피하여 주로 진골목으로 경상감영 출입을 하여 신분에 따라 이용하는 골목길이 달랐음을 알 수 있다.
[명칭 유래]
남일동은 대구읍성 성곽 안에 있어 남성안, 남성내리로 불렸다. 1947년 남쪽 성관 안의 첫째 마을이라 하여 ‘남일동’이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원래 대구부 동상면 남일동이었는데, 1911년 행정구역 통폐합 당시 전동·사일동·사이동 일부가 합쳐져 경상북도 대구부 남정(南町)이 되었다. 1947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남정을 남일동으로 변경하였다. 1949년 대구의 시 승격으로 경상북도 대구시 남일동이 되었다. 1963년 구제(區制) 실시로 경상북도 대구시 중구 남일동이 되었다.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1981년 대구직할시 중구 남일동이 되었고, 1993년에는 대구직할시 중구 남일동 일부가 중구 포정동으로 편입되어 동 경계가 조정되었다. 1995년에 행정구역 명칭 변경에 따라 대구광역시 중구 남일동이 되었다. 남일동은 법정동이고 행정동은 성내1동과 성내2동이다.
[자연환경]
대구분지 한가운데 위치하는 중구의 특성상 도시화 이전부터 평지였다. 분지 한가운데를 남에서 북으로 가로질러 흐르는 신천 범람의 영향을 받아 도시화 이전에는 신천의 분류로 인한 습지가 곳곳에 발달하였다.
[현황]
남일동은 대구광역시 중구 종로2가·동성로2가·동성로3가·사일동·포정동·전동·동일동 등지와 경계를 이룬다. 한가운데로 중구의 중심 도로인 중앙대로가 남북으로 달린다. 중앙대로와 함께 대구도시철도 1호선도 지난다. 중구의 한가운데여서 접근성이 매우 좋다.
인근에 대구 최고 번화가인 동성로가 있고 종로에서 진골목으로 이어지는 길목이 있어 대구근대화골목의 핵심 관광지다. 중앙대로는 ‘대구 대중교통 전용지구’로 지정된 이래 도보 관광이 활성화된 곳이라 영화관을 비롯하여 다양한 볼거리와 먹거리가 즐비하다. 진골목에서는 대구의 다양한 향토음식을 맛볼 수 있음은 물론이고 1900년대 전기 대구의 대표적인 건물도 만날 수 있다. 역사성을 가지는 건물로는 정소아과 건물[서병직의 집], 진골목식당[서병원의 집]이 있다. 종로와 진골목은 대구 출신 소설가 김원일(金源一)이 1988년에 출간한 『마당 깊은 집』의 배경지로도 유명하다. 『마당 깊은 집』의 배경지는 진골목에 자리잡은 백록식당으로, 모 방송국의 드라마로 제작되어 대구의 정겨운 골목을 전국에 알리는 데에 크게 기여하기도 하였다. 특히, 1937년에 건축된 유럽풍의 일본 건축물로 보이는 정소아과 건물은 대구 최초의 이층 양옥집이다. 소아과 원장이었던 정필수 박사가 1947년에 개원하였던 건물이다. 정소아과 건물은 근대 대구를 대표하는 건축물로서 문화 역사적 가치가 크다. 진골목에는 오랜 전통을 이어오는 미도다방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