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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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克一 |
이칭/별칭 | 용협(用協),모암(慕庵),효절(孝節)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출생 시기/일시 | 1382년 - 김극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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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456년 - 김극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1482년 - 김종직이 찬한 효자문비 건립 |
추모 시기/일시 | 1545년 - 김극일 사헌부 집의에 추증 |
추모 시기/일시 | 1636년 - 대제학 조경이 발문을 쓴 비가 세워짐 |
거주|이주지 | 김극일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백곡리 |
묘소|단소 | 김극일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나복산 |
사당|배향지 | 자계 서원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서원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김해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문인.
[가계]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용협(用協), 호는 모암(慕庵). 아버지는 의흥 현감(義興縣監) 김서(金湑)이다. 부인은 한성 부윤 이간(李暕)의 딸이다.
[활동 사항]
김극일(金克一)[1382∼1456]은 어릴 때부터 조부모와 부모를 지성으로 봉양했고, 장성한 뒤에는 장인 김서의 간곡한 관직 진출 요청이 있었으나, 양친을 봉양해야 함을 이유로 거절하고 성심을 다하여 모셔서 효행으로 명성을 떨쳤다. 또한 아들 김맹(金孟)은 물론 손자 김준손(金駿孫)·김기손(金驥孫)·김일손(金馹孫)의 훈회에도 정성을 기울여 이들 모두가 문과에 급제할 수 있는 학식과 절행으로 명성을 떨치는 토대를 이루게 하였다. 벼슬은 통덕랑(通德郞) 사헌부 지평을 지냈다.
[학문과 저술]
야은(冶隱) 길재(吉再)의 문인이며, 문장이 능통하고 학문이 깊었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명대리 나복산(蘿葍山)에 있다. 묘재(墓齋)인 영모재(永慕齋)가 있다.
[상훈과 추모]
세종 때 청도 군수를 지낸 이기(李掎)가 실상을 갖춰 조정에 알렸고, 이어 부임한 군수 조금(趙嶔)이 조정의 명을 받들어 효자 정려(孝子旌閭)가 건립되었으며, 1482년(성종 13) 김종직(金宗直)이 찬한 효자문비가 다시 건립되었다. 1636년 대제학 조경(趙絅)이 발문을 쓴 비가 세워졌다.
청도의 자계 서원(紫溪書院)에 제향되었으며, 사시(私謚)는 효절(孝節)이다. 사헌부 집의에 증직되었다. 『오산지』에 「절효 선생 춘추상향축문(春秋常享祝文)」이 전한다. 김극일의 효성에 대해서는 『속삼강행실』에도 수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