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10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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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詳 |
이칭/별칭 | 모와(慕窩) |
분야 |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출생 시기/일시 | 1568년 - 박상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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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621년 - 박상 사망 |
거주|이주지 | 박상 거주지 - 경상북도 청도군 이서면 신촌리 |
묘소|단소 | 박상 묘소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 |
본관 | 밀양 |
[정의]
조선 전기 청도 출신의 효자.
[가계]
본관은 밀양(密陽). 호는 모와(慕窩). 고려 봉익대부 밀직 부사 박양언(朴良彦)의 후손으로, 두촌(杜村) 박양무(朴揚茂)의 7세손이다. 박광생(朴光生)의 둘째아들이고, 진사 박광형(朴光亨)의 양자이다. 어머니는 참봉 김명록(金命祿)의 딸로 상주 김씨(尙州金氏)이고 양어머니는 좌통례(左通禮) 유저(柳渚)의 딸로 약목 유씨(若木柳氏)이다. 부인은 유저(柳渚)의 손녀로 첨지직(僉知直) 유간(柳諫)의 딸이다.
[활동 사항]
박상(朴詳)[1568∼1621]은 선조 때 승훈랑(承訓郞)으로 호조 좌랑을 지냈다. 부부간에 효성이 지극하기로 유명하였는데, 특히 부인 유씨의 효행은 유별났다. 박상이 임진왜란 때 어버이를 위하여 호남으로 쌀을 구하러 나가서 돌아오지 못하자 부인 유씨는 시어머니를 받들어 섬기는데 낮에는 등에 업고 왜군을 피하여 도망하고 밤이면 돌아와 지극정성으로 봉양하였다. 그러다가 끝내 시어머니가 돌아가시자 혼자 시신을 수습하고 흙을 쌓아 봉분을 만든 뒤 큰 글씨로 망일(亡日)을 적어 둔 다음 빈소 곁에서 자신도 따라 죽었다 한다.
[묘소]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유등(柳等) 안골 뒷산에 있다. 청도군 이서면 칠곡리에 묘재(墓齋)인 중산재(中山齋)가 있다.
[상훈과 추모]
박상의 처 유씨 부인의 효행 사실이 군지(郡誌)에 실려 있고, 효행을 포상한 글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