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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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權佾 |
이칭/별칭 | 자만(子萬)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권일은 조선 후기 문신으로, 청도 군수로 재직할 때 『오산지(鰲山誌)』를 편찬,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을 잘 정리하였다. 재임 중 통치를 잘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를 받았는데, 청도에 세웠던 청덕비가 지금까지 전한다.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자만(子萬). 거주지는 한양이다. 아버지는 통훈대부(通訓大夫) 정선 군수(旌善郡守) 권담(權紞)이고, 권수(權脩)의 형이다.
[활동 상황]
권일(權佾)[1608∼ ?]은 26세 되던 1633년(인조 11년)에 사마시 식년 생원과에 합격하였고, 여러 관직을 거쳐 1671년(현종 12) 12월에 청도 군수로 도임하였다. 군수로 재직하던 1673년(현종 14)에 당시 청도의 향로(鄕老) 수헌(壽軒) 이중경(李重慶)이 사찬 읍지인 『오산지』를 찬하였다. 인문지리서 성격의 『오산지』에는 청도 지역의 제도와 문물은 물론 당시 청도 사족들의 동향까지 잘 정리되어 있어 역작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선조인 권근이 청도 읍성 안에 있던 청덕루(淸德樓) 제영(題詠)을 한 것이 전해오던 인연이 있어 권일도 읍지 편찬에 관심을 기울인 것으로 보인다. 권일은 재임 중에 청덕루를 중창하기도 했다.
1675년(숙종 2) 2월 21일 경상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던 권해(權瑎)가 염문하고 돌아와서 문경 현감 정문용(鄭文瑢)과 청도 군수 권일 등이 선치했다고 보고하여 숙종으로부터 표리(表裏)[옷의 겉감과 안집]를 하사받았다. 그 후 1675년(숙종 2) 4월에 말미를 받아 상경하였다가 7월에 벼슬에서 물러났다. 몰년 시기는 알 수 없다.
[상훈과 추모]
임지였던 청도에 세워진 청덕비(淸德碑)가 청도 도주관(道州館) 좌측에 현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