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남천한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500982
한자 南天漢
이칭/별칭 장우(章宇),고암(孤巖)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청도군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박홍갑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607년연표보기 - 남천한 출생
활동 시기/일시 1646년 - 남천한 식년 문과 급제
활동 시기/일시 1656년 - 남천한 사헌부 지평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57년 - 남천한 사간원 정언 역임
활동 시기/일시 1663년연표보기 - 남천한 청도 군수로 부임
활동 시기/일시 1664년연표보기 - 남천한 청도 군수에서 이임
활동 시기/일시 1674년 - 남천한 사헌부 장령에 제수
활동 시기/일시 1675년 - 남천한 대사간으로 승진
활동 시기/일시 1680년 - 남천한 경신대출척으로 호조 참의 삭탈
몰년 시기/일시 1686년연표보기 - 남천한 사망
출생지 남천한 출생지 - 경상북도 안동시
사당|배향지 봉암 서원 -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매곡리
성격 문신
성별
본관 영양
대표 관직 호조 참의

[정의]

조선 후기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남천한은 조선 후기의 문신으로, 사헌부 장령·대사간 등을 거쳐 승지를 지냈다. 호조 참의로 있을 때 경신대출척이 일어나 벼슬을 박탈당하였다. 예론에 밝아 예송에 깊이 참여하였으며, 봉암 서원에 배향되었다.

[가계]

본관은 영양(英陽). 자는 장우(章宇), 호는 고암(孤巖). 안동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남응원(南應元)이고 할아버지는 남융달(南隆達)이다. 아버지는 남잡(南磼)이고, 남천택(南天澤)의 형이다.

[활동 상황]

남천한(南天漢)[1607∼1686]은 1630년(인조 8) 진사가 되고, 1646년 식년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656년(효종 7) 이래 사헌부 지평·장령 등의 대간직을 거쳐 1663년(현종 4) 3월에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 이듬해 12월에 벼슬에서 물러날 때 2백여 곡(斛)이나 되는 모곡(耗穀)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는 혐의로 대간의 탄핵을 받았다.

그 후 1674년에 다시 사헌부 장령에 제수되어 직임을 수행하던 중, 숙종이 즉위하자 가장 먼저 송시열(宋時烈) 유배와 송준길(宋浚吉)의 관작 추탈을 주장하였다. 1675년(숙종 2) 집의·대사간으로 승진하고, 이듬해부터 여러 차례 승지를 역임하였다. 숙종의 깊은 신임을 얻어 1680년(숙종 10) 호조 참의가 되었으나 그해 경신대출척[서인 일파가 반대파인 남인을 몰아내고 권력을 잡은 사건, 경신환국이라고도 함]이 일어나 벼슬이 삭탈되었다

[학문과 저술]

예론에 밝아 민신(閔愼)이 병든 아버지를 대신하여 할아버지의 복을 입으려는 것을 논란 끝에 막은 일이 있다. 또 예송(禮訟)에 깊이 참여하여 남인의 입장을 앞장서 천명하였다. 저서로는 문집인 『신안세고(新安世稿)』가 있는데, 남융달남연(南碝)·남급(南礏)의 문집을 한데 묶어 간행한 것이다.

[상훈과 추모]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매곡리에 있는 봉암 서원(鳳巖書院)에 배향되었다. 봉암 서원은 1825년(순조 25)에 지방 유림의 공의로 남응원(南應元)·남융달(南隆達)·남급(南礏)·남천한(南天漢)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다. 또 경상북도 예천군에 위치한 풍암 서원(風巖書院)에도 배향되었다. 풍암 서원은 남천한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창건되었는데,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1868년에 훼철되었다.

[참고문헌]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