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966 |
---|---|
한자 | 安覯 |
이칭/별칭 | 사중(思仲),태만(苔巒)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전기에 청도 군수를 지낸 문신.
[개설]
안구는 조선 전기 문신으로, 부모 봉양을 위해 청도 군수로 부임하였다. 부임 초부터 백성을 잘 보살피고 선정을 베푼 공로를 인정받아 포상을 받았다.
[가계]
본관은 광주(廣州). 자는 사중(思仲), 호는 태만(苔巒). 할아버지는 시직(侍直) 안숙량(安淑良)이고, 아버지는 진사 안보문(安普文)이다. 어머니는 사인(舍人) 정지주(鄭至周)의 딸이다.
[활동 상황]
안구(安覯)[1458∼1522]는 1494년(성종 25) 별시 문과에서 병과로 급제하였다. 무오사화 무렵에 파직되었다가 이듬해 윤필상·어세겸 등의 추천으로 다시 임용되었고, 1505년(연산군 11)에 사헌부 헌납으로 재직할 때 시를 잘 지어 임금에게 직접 술과 과일을 하사받았다. 개령(開寧) 현령으로 나갔다가 고과 성적이 뛰어나 예조 정랑으로 승진하였다.
중종 초에 부모 봉양을 위해 청도 군수로 나가 명성을 떨쳤다. 청도 군수로 재임한 정확한 기간은 알 수 없다. 1507년(중종 2) 군수로 부임한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임에도 불구하고 백성을 잘 보살피고 선정을 베푼 공로를 인정받아 경상도 관찰사 장순손(張順孫)의 천거로, 상주 목사 손중돈과 함께 왕이 내리는 비단을 받았다.
그 뒤 사간원 사간에 제수되고, 1517년 집의(執義)에 제수되었으나 직언을 하다가 남원 부사로 좌천되었다. 얼마 후 다시 중앙으로 돌아와 종부시 정을 역임하였다.
[학문과 저술]
김종직(金宗直)의 문하생으로 그 영향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