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4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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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周虎不忘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944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877년 3월 4일 - 이주호 불망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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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이주호 불망비 -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944 |
성격 | 선정비 |
양식 | 규수(奎首) |
관련 인물 | 서유민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78㎝[높이]|36㎝[너비]|14㎝[두께] |
소유자 | 청도군청 |
관리자 | 청도군청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에 있는 조선 후기 불망비.
[개설]
이주호(李周虎)의 본관은 고성이며, 호는 죽남(竹南)으로 고성 이씨 청도 입향조 모헌(慕軒) 이육(李堉)의 후손이다. 매전면 장연리에 거주하면서 평소 의협심과 의혈지기로 향내에 고풍지사(高風之士)라는 칭송이 자자하였다 한다.
[건립 경위]
이주호는 1876년(고종 13)에 큰 흉년을 당한 동민들을 위하여 양곡을 풀어 구휼하였다., 이듬해에는 마을에서 밀린 호세(戶稅)를 대납(代納)하여 동민들의 어려운 상황을 면하게 하였고, 매년 연초에는 음식을 마련하여 노인들에게 드렸다. 이러한 구휼 행위와 선행을 동민들은 수령에게 상소하여 표창하게 했으며, 암행어사 순행에 이를 건의하여 예조에 장계를 올려 포상문을 받았다.
동민들도 이를 칭송하기 위하여 감역(監役) 이준정(李俊珽) 등 후손들의 주도로 1877년(고종 14) 3월 4일에 불망비를 건립하였다.
[위치]
청도군 매전면 장연리 서북쪽의 동창천변 암벽 위에 있다. 비석 옆에 동창천이 흐르고 있고 주위에 쉼터와 당목이 있다.
[형태]
비석 양식은 비좌 없이 자연 암반 위에 비신을 세운 규수(奎首) 형태이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78㎝, 너비 36㎝, 두께 14㎝이다.
[금석문]
〈전면〉
유학이주호진휼불망비(幼學李周虎賑恤不忘碑)// 무곡진기(貿穀賑飢)/ 호생지인(好生之仁)/ 척토당포(斥土當布)/ 제군지의(濟窘之義)/ 세시설병(歲時設餠)/ 양로지례(養老之禮)/ 빈이호시(貧而好施)/ 출인지지(出人之智)/ 협수지은(浹髓之恩)/ 각석위신(刻石爲信)[곡식을 사서 굶주린 자를 진휼하시니/ 생명을 좋아하는 어짊이요/ 땅을 개척하여 베푸셨으니/ 빈곤한 이를 구제한 의리요/ 세시적마다 떡을 마련하셨으니/ 노인을 봉양하는 예법이요/ 가난하나 베풂을 좋아하시니/ 남보다 뛰어나신 지혜요/ 골수에 사무친 은혜/ 돌에 새겨 신표로 삼는다네.]
(후면)
정축구월일무술삼월사일(丁丑九月日戊戌三月四日)// 증손개각 감역 이준정(曾孫改刻 監役 李俊珽)[1877년(고종 14)에 3월 4일 증손 이준정이 새로 중건하였다.]
[현황]
동창천 옆에 있는 이주호 불망비에는 별도의 보호 시설이나 안내판은 없지만 보존 상태는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현재 청도군 내에는 1877년(고종 14)에 건립된 구휼 행위를 찬양하기 위해 세워진 사족들의 선정비가 이주호 불망비를 포함하여 이규환 송덕비[2기], 신연한 송덕비[1기] 4기가 세워져 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흉년이 매우 심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지역 내 명망 있고 영향력을 가졌던 이주호가 그에 따르는 사회적 책무를 회피하지 않고 이행했음을 보여주는 불망비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