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4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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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尙繼道頌德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569-3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929년 - 상계도 송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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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상계도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569-3 |
성격 | 송덕비 |
양식 | 비좌규수(碑座奎首) |
관련 인물 | 상계도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13㎝[높이]|32㎝[두께] |
소유자 | 청도군청 |
관리자 | 청도군청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에 있는 일제 강점기 상계도 송덕비.
[개설]
상계도는 일제 강점기 인물로 자료가 부재하여 정확한 생몰 연대 및 가계를 상고할 수 없다. 다만 1931년 6월 25일 충무공 유적지 보존 문제로 성금 1원을 냈다는 기록이 있다.
[건립 경위]
각북면 소작인들이 송덕비를 건립했다는 비문 내용으로 보아 지주인 상계도의 토지를 경작하며 은혜를 입은 것을 기념하기 위하여 1929년 세운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덕산지 동쪽 논둑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비석 양식은 농대석(籠臺石) 위에 비신을 세운 비좌규수(碑座奎首) 형태이며, 가첨석이 훼손되었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후면에는 설립자 명단이 측면에는 간지(干支)를 새겨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3㎝, 너비 32㎝이다.
[금석문]
(전면)
유학 상계도 송덕비(幼學尙繼道頌德碑)// 자궐선세(自闕先世)/ 부이차인(富而且仁)/ 감응일기(感應一氣)/ 독생사인(篤生斯人)/ 감기전조(減其田租)/ 제아궁빈(濟我窮貧)/ 자기가망(玆豈可忘)/ 각시무은(刻示無垠)[여러 대 동안 베푼 선한 마음은/ 소두만큼 세금을 줄이도록 하였네./ 아름다움을 오로지 차지하지 말게 하며/ 바꾸지 말고 굳게 지켜나가리라.]
(후면)
각북면소작인립(角北面小作人立)[각북면 소작인 일동 건립]
(측면)
소화사년십월(昭和四年十月)[1929년]
[현황]
청도군 각북면 덕촌리 덕산지 동쪽 논둑에 위치한 송덕비는 가첨석이 훼손된 상태이다. 비석 보호 시설과 안내판은 없다.
[의의와 평가]
조선 시대뿐만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도 소작인들이 지주를 위하여 건립한 송덕비는 전국적으로 상당수 남아 있다. 지주들로부터 소작권, 즉 생존권이 좌우되던 소작인 입장에서는 지주의 작은 은택에도 감사해 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한편, 지주 입장에서도 아마도 흉년으로 소출량이 적어 소작료를 어차피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조작료 감면 이외에는 별 대안이 없었을 것이다. 지주는 소작료 감면으로 소작인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통제할 수 있고, 소작인들은 송덕비 건립으로 화답하여 지속적인 소작권을 유지하고자 하는 상호간의 염원이 내포하고 있는 비석으로 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