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35 |
---|---|
한자 | 崔潤坤不忘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화리 138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880년 - 최윤곤 불망비 건립 |
---|---|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 1791년 - 최윤곤 출생 |
현 소재지 | 최윤곤 불망비 -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 138 |
성격 | 선정비 |
양식 | 비좌개석(碑座蓋石) |
관련 인물 | 조시만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50㎝[높이]|37㎝[너비]|22㎝[두께]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각남면 일곡리에 있는 진사 최윤곤 선정비.
[개설]
최윤곤(崔潤坤)은 본관이 경주, 자는 덕오(德五), 호는 눌우(訥愚)이다. 승사랑(承仕郞) 최창문(崔昌文) 의 아들로 1791년(정조 15)에 청도에서 출생하였다. 41세 때인 1831년(순조 31) 신묘(辛卯) 식년시(式年試) 진사시에 합격하였고,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通政大夫 僉知中樞府使兼五衛將)을 지냈다.
[건립 경위]
비문에 따르면 가문을 중흥시키고, 주위에 베푼 은택을 기념하기 위하여 최윤곤 가문에서 1880년(고종 17년) 12월에 건립한 것으로 보인다.
[위치]
청도군 각남면 화리 바깥 마실 뒤편의 야산 끝자락에 있는 구씨 효열각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비신 하단 일부가 시멘트에 매몰되어 있고, 비좌개석(碑座蓋石) 양식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후면에는 간지(干支)와 건립 관련자 명단을 새겨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50㎝, 너비 37㎝이다.
[금석문]
(전면)
통정대부 첨지중추부사 겸 오위장 최윤곤 영세불망비(通政大夫僉知中樞府使兼五衛將崔潤坤永世不忘碑)// 행독제가(行篤齊家)/ 택급주빈(澤及周貧)/ 편석감어(片石堪語)/ 유구유신(悠久愈新)[돈독한 행실로서 집안을 바로잡았으며/ 은택은 주변의 가난한 자에게도 미치었네./ 작은 비석으로 어찌 다 말하리오./ 오래될수록 더욱 새로우리라.]
(후면)
광서 육년 경진 십이월 일립(光緖六年庚辰十二月日立)// 유학 김영우 장룡준 감 이정열 찬 예대기 서(幼學 金泳瑀 蔣龍㻐 監 李庭烈 撰 芮大畿 書)[1880년(고종 17년) 12월 건립// 유학 김영우와 장룡준이 감독하고, 이정열이 찬술했으며, 예대기가 글씨를 썼다.]
[현황]
비석은 단칸 규모 주상부(柱上部)는 이익공(二翼工)으로 꾸민 맞배 기와지붕 안에 보호되고 있고, 주위에 철재 구조물을 둘러놓았다. 비각은 1975년에 중수했으나, 2012년 현재 비각 내에는 참새와 벌레들이 많이 살고 있는 등 관리 전체적으로 부실하다.
[의의와 평가]
최윤곤 영세불망비는 자연 재해를 입어 어려움에 처한 주민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돈독한 행실로 집안을 바로 잡은 공로를 후세에 전하고자 건립된 비석이다. 최윤곤의 선행과 은택을 입은 주민들의 마음이 담긴 문화유산으로서 가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