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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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時萬永世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650-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784년 - 조시만 영세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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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조시만 영세비 -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650-6 |
성격 | 선정비 |
양식 | 규수(奎首) |
관련 인물 | 조시만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14㎝[높이]|48㎝[너비]|22㎝[두께] |
소유자 | 청도군청 |
관리자 | 청도군청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에 있는 조선 후기 청도 군수 조시만의 선정비.
[개설]
조시만은 본관은 풍양이고, 자는 경박(敬博)이다. 사마시에 급제 후 1774년(영조 50) 9월 청도 군수로 부임하여 1776년(영조 52) 7월 전라도 나주 목사로 이배되었다. 그 뒤 호조 정랑, 상주 목사(尙州牧使) 등을 역임하였다.
[건립 경위]
비문에 의거하면 조시만이 학교흥(學校興), 즉 청도 향교 중흥시킨 치적을 칭송하기 위하여 이배한 지 8년 뒤인 1784년(정조 8) 2월 향인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위치]
조선 시대 성내(城內) 읍 소재지였던 청도군 화양읍 서상리 비석 마을 어귀 개울가 옆에 있다.
[형태]
비신 하단 일부가 시멘트에 매몰되어 있고 별다른 장식이 없는 규수(奎首) 양식의 비석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후면에는 간지(干支)와 건립 관련자 명단을 각석해 놓았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14㎝, 너비 48㎝, 두께 22㎝이다.
[금석문]
(전면)
군수 조 후 시만 영세불망비(郡守趙侯時萬永世不忘碑)// 정선학교(政先學校)/ 택류이민(澤流吏民)/ 래이삼재(來莅三載)/ 거사천춘(去思千春)[학교를 우선하여 살펴보시니/ 그 은택이 관리와 백성들에게 미치었네./ 부임하시어 삼년간 계셨으니/ 떠나셔도 영원히 그리워하네.]
(후면)
건륭 사십구년 갑진 이월(乾隆四十九年甲辰二月)// 향인 진사 ○경림 찬(鄕人 進士 ○瓊林 撰)/ 유학 임○룡 서(幼學 林○龍 書)/ 김○ 감조(金○ 監造)[1784년(정조 8) 2월 세워졌고 향인 진사 ○경림이 찬술하고/ 유학 임○룡이 글을 적었으며/ 김○이 감독하였다.]
[현황]
비석 마을 어귀 개울가 옆에 위치한 이 비석은 주변 공사 때 비신 하단이 매몰되어 원형을 잃었다. 별도의 보호 시설과 안내판 없이 세워져 있으며, 비석에 이끼가 많이 끼어 상태가 좋지 못한 편이다.
[의의와 평가]
성리학적 사회를 지향한 조선 사회에서 수령 칠사(守令七事) 가운데 한 조목인 학교흥(學校興)[학교를 일으킴]은 수령의 중요한 통치 덕목 중 하나였다. 군수 조시만이 학교흥을 통해서 수령 본연의 책무를 원활히 수행했음을 보여주는 비석으로 평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