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7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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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趙秉吉頌德碑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542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채광수 |
건립 시기/일시 | 1895년 - 조병길 송덕비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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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소재지 | 조병길 송덕비 -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 542 |
성격 | 선정비 |
양식 | 비좌하엽(碑座荷葉) |
관련 인물 | 조병길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너비,두께) | 131㎝[높이]|38㎝[너비]|40㎝[두께] |
소유자 | 청도군청 |
관리자 | 청도군청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청도읍 유호리에 있는 개항기 청도 군수 조병길의 선정비.
[개설]
1851년(철종 2) 출생한 조병길은 본관은 풍양, 자는 경학(敬學)이며, 부친은 이조 참의를 지낸 조문화(趙文和)이다. 조병길은 1885년(고종 22) 을유(乙酉) 식년시(式年試)에서 생원 3등을 한 이후, 창녕 현감을 거쳐 1895년(고종 32) 9월 청도 군수로 도임하였다. 1899년(고종 36) 정월 16일까지 약 4년간 재직하다가 황해도 신천 군수로 이배하였다.
『조선왕조실록』에 조병길이 창녕 현감으로 재직하던 1894년(고종 31) 주민들에게 함부로 거두어들이는 일을 철저히 없애고, 여러 가지로 은혜를 베풀어 표리(表裏) 1습(襲)을 하사 받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로 미루어 청도 군수로 재임할 당시에도 선정을 펼친 결과 선정비와 송덕비가 건립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건립 경위]
청도읍성에 있는 또 다른 2기 선정비에는 역참(驛站) 정비와 흥학(興學)이라는 구체적인 건립 경위를 비문에 새겨 놓았으나, 이 비석은 일반적인 찬시(讚詩)만 적혀 있어 선정을 칭송하기 위하여 건립된 것으로 짐작할 뿐이다. 1895년(고종 32)에 건립하였다.
[위치]
청도읍 유호 1리 유천 마을 북쪽 끝 집 담장에 위치하고 있다.
[형태]
비좌는 매몰되어 있고, 비신과 비갓이 한 몸으로 제작되어 있다. 비갓은 6엽의 연꽃 모양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여 그 위에 보주(寶朱)로 장식한 비좌하엽(碑座荷葉) 양식이다. 전면에는 비명(碑銘)과 찬시(讚詩)를 새겨 두었다. 재질은 화강암이며, 높이 131㎝, 너비 38㎝, 두께 40㎝이다.
[금석문]
(전면)
군수 조 후 병길 청덕 선정비(郡守趙侯秉吉淸德善政碑)// 일심순법(一心循法)/ 부토귀민(副土歸民)/ 혜비사야(惠非私也)/ 정내공언(政乃公焉)/ 승총역혼(鵿總易混)/ 기주변진(起主辨眞)/ 택소균피(澤所均被)/ 석가영언(石可永言)[한마음으로 법을 따르고/ 토석에 부응하니 백성들을 귀속하였네./ 은혜는 사사롭게 하지 않고/ 다스림은 이에 공평하였네./ 총론을 이루어 혼란을 바꾸고/ 주장을 일으켜 참됨을 변별하였네./ 그 혜택을 골고루 입게 되니/ 비석으로 길이 말할 만 하리라.]
[현황]
유천 마을은 넓고 현지 주민들에게 물어봐도 비석의 존재를 알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 찾기가 쉽지 않다. 마을 북쪽 끝 민가 담장 옆에 위치한 조병길 송덕비는 별도의 보호 시설과 안내판이 없이 방치되어 있어, 보존 상태가 좋지 못한 편이다.
한편 조병길의 선정비는 화양읍 서상리 청도읍성에 1896년과 1899년에 각각 건립된 2기가 더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