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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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道治安隊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기관 단체/기관 단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권대웅 |
[정의]
광복 직후 경상북도 청도 지역에 있었던 조선건국준비위원회 소속 치안 유지 단체.
[설립 목적]
청도 치안대는 1945년 해방 직후 과도기 청도 지역의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조직되었다.
[변천]
1945년 8월 20일에 청도군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될 당시 치안대가 설치되어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였다. 10월 13일에 미군이 진주하여 경찰력을 복구시켜 치안권을 이양하자 치안대의 활동은 사실상 종결 해체된 것으로 보인다.
1945년 8·15 해방 이후 미군이 들어오는 10월 13일까지 약 2개월간 청도 지역의 치안은 극도로 불안한 시기였다. 과도기의 국내 질서와 치안을 유지하기 위해 8월 16일에 서울에서 건국 준비 위원회가 결성이 되고 같은 날 경상북도 지부도 만들어졌다.
청도군에서도 8월 20일 경 군민 대회를 거쳐 건국 준비 위원회를 조직한 다음 건국 준비 위원회 소속 청년부 산하에 치안대를 설치하여 지역의 치안을 담당하게 하였다.
이후 건국 준비 위원회 경상북도 지부가 우익 계열 중심의 경상북도 치안 유지회와 통합하자 청도군에서도 이를 본받아 좌우 연합 조직으로서의 청도 치안 유지회로 개칭 후 조직되었다.
그러나 미군정이 시작되자 건국 준비 위원회와 기존의 치안대 존재를 부정하고 일제 강점기 전직 경찰을 대거 복직시켜 경찰에게 치안권을 이전하자 치안대는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되었다. 10월 13일에 미군이 진주한 청도 지역도 마찬가지 상황이었다.
[현황]
청도 치안대의 현황을 구체적으로 입증할 만한 자료는 없다. 다만 상급 조직인 청도군 건국 준비 위원회의 임원 현황은 파악이 되는데 위원장에는 이승재(李承在), 부위원장 안기택, 총무 박순현, 노동부 안달수 등 중도 좌파적 성향의 인사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의의와 평가]
청도 치안대는 해방 정국 하에서 미군이 진주할 때까지 짧은 기간이지만 청도 지역의 치안과 질서 유지에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