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4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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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院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박홍갑 |
[정의]
조선 시대 청도 지역을 거치는 여행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시설.
[개설]
조선 시대 지방에 파견되는 관리나 상인 등 청도 지역 여행자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원이 설립되었다. 여행자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던 일종의 여관이다. 삼국 시대부터 우역(郵驛)을 설치했다는 기록이 있고, 조선 시대에는 약 1,310개소의 원들이 각 지역에 설치 운영되었다.
[원의 운영]
대로(大路), 중로(中路), 소로(小路)로 나눠, 대로는 5호, 중로는 3호, 소로는 2호를 원주(院主)로 임명했는데, 그 임명권은 수령에게 있었다. 원 운영의 책임은 맡은 원주는 잡역이 면제되었다. 운영 경비를 충당하기 위해 대로는 1결 35부(負), 중로는 90부, 소로는 45부의 원위전(院位田)이 지급되었으며 관찰사가 감독하였다. 공공의 임무를 띤 여행자뿐만 아니라 일반 행인에게도 숙식처로 제공되었다. 공무 여행자의 숙식을 고을이나 역에서 주로 담당했기 때문에 임진왜란 이후에는 주막 또는 주점으로 변하기도 했다.
[청도 지역 원 운영 현황]
전통 사회의 전국 도로망에서 청도는 한양과 부산[동래]을 이어주는 교량 역할을 했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했다. 특히 일본이나 유구국 사신들이 상경하는 길목인 동시에 그들의 침입로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청도 지역에는 일찍이 역참이나 원과 봉수 등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있었다. 조선 초기까지 10개소의 원이 운영되고 있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8개는 폐쇄되었고, 2곳만이 운영되었다.
밀양과 경계에 있던 유천 객관(楡川客館)[현 청도읍 유호리]과 군 서쪽 5리길에 있던 늑원(勒院)[현 화양읍 신봉리]만이 조선 후기에 운영된 것으로 확인된다. 그 나머지 삼기원(三岐院)[상동면 운문사 입구에 있었다]을 비롯하여 말음원(末音院)[현 운문면 방음리], 대천원(大川院)[현 운문면 대천리], 공암원(孔岩院)[현 운문면 공암리], 적암원(赤岩院)[현 매전면 지전리], 제생원(濟生院)[현 청도읍 원리], 냉천원(冷泉院)[현 청도읍 고수리 찬물샘 인근], 여해원(如海院)[화양읍 범곡리], 양원(陽院)[현 이서면 양원리], 이길원(利吉院)[현 각남면 신당 2리] 등은 조선 후기 폐쇄되어 터만 남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