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55002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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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馬日里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 마일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윤제 |
[정의]
경상북도 청도군 운문면에 속하는 법정리.
[개설]
지형적으로 청도와 경상북도 경주시·영천시, 밀양의 비입지와 접경 지역으로 구룡산 아래 교통이 불편한 오지 마을이었지만, 지방도 921호선의 개통으로 인하여 영천시 북안면이 주요 생활권이 되었다.
[명칭 유래]
‘마일’이란 지명은 오래전부터 산골에 마을이 있어서, 청도 말로 마을인 마알로 불리다가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 때 마일로 변했다고 전하고 있다. 마을로는 아랫마을·평지마·구 마실·안 마실·외두리·음지마·새집마·신당·괴기[괴틀]·수암[아래 수암, 윗수암] 등이 있다.
평지마는 마일리 가장 아래쪽에 위치하고 있는 자연 마을로, 마일리에서는 가장 평탄한 곳에 위치하기 때문에 평지 마을이다. 마하동(馬下洞), 마곡(馬谷) 또는 마실로도 불린다. 아랫마을은 오래전 태풍이 지나간 이후에 하천이 바뀌면서 일부 지역이 방향을 바꿔 새로 형성되어 만들어진 마을이다.
외두리, 음지는 평지 마을 건너 동쪽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바깥쪽 음지에 있는 마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응달쪽에 있어서 음지이고 바깥 부분에 있어서 외두리라고 한다. 구 마실은 지방도 921호선 아래 마을로 가장 오래된 마을이어서 구 마실로 불리고 있으며, 안 마실은 구 마실의 서쪽 구룡산 줄기인 달발산 안쪽에 있다.
새집말은 평지 마을에서 바라보면 산 중턱에 자리한 마을이다. 평지 마을에서 살다가 이곳으로 옮겨와 새로 집을 지어서 살기 때문에 새로 집을 지어 산 사람들이 ‘새 집 마을’이라 부르게 되었다. 지금은 모두 떠나고 절만 하나 들어서 있다. 신당 마을 앞에는 지석묘가 여러 기(基) 있다. 이곳에는 일찍이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있는데 신당이라는 이름은 사람들이 살던 동네가 폐동이 되어 빈 채로 있다가 다시 새로 사람들이 모여서 살게 된 곳이라고 하여 붙여진 것이라고 한다.
괴기는 골짜기 마지막에 자리한 자연 마을의 이름으로 영천시 북안면과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수암은 청도에서는 가장 높은 지대에 형성된 마을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다. 수암에는 신라 때 다섯 개의 암자를 거느린 큰 사찰인 수암사(水巖寺)라는 절이 있었으나, 점차 절이 쇠락함에 따라 민가가 들어서면서 절은 폐사되었다고 한다.
[형성 및 변천]
경주와 영천, 경산의 접경 지역으로 청도와 경주의 행정 구역으로 번갈아 편입되었고, 조선 중엽까지는 경주에 속해 있었다. 청도군 고미면 지역으로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마상동과 마하동을 합하여 마일동이라 하고 운문면에 편입되었다. 1988년 마일동에서 마일리로 이름을 바꾸었다.
[자연 환경]
청도의 제일 동북쪽에 위치한 마을로 영천시 북안면 상리와 맞닿은 곳에 있다. 구룡산 높은 봉우리가 북쪽을 막고, 그 주봉들인 우라봉과 마일봉이 마을의 앞과 뒤를 막으면서 마을은 가운데 계곡에 주로 형성되어 있다. 경작지는 마일천 양안으로 논이 있고, 산비탈에는 계단식 밭을 일구어 대부분 고추와 콩 등을 경작하고 있다.
[현황]
2012년 7월 현재 면적은 10.57㎢이며, 총 91가구에 134명[남자 63명, 여자 71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동쪽은 경주시 산내면 우라리, 서쪽은 운문면 정상리·매남리, 남쪽은 운문면 봉하리·경주시 산내면 내칠리, 북쪽은 영천시 북안면 상리·당리와 경계를 접하고 있다. 행정리로 마일 1리와 마일 2리가 있다. 마일 1리에는 아랫마을·평지마·구 마실·안 마실·외두리·음지마·새집마 등 6개 자연 마을이 있고, 마일 2리에는 신당·괴기[괴틀], 수암[아래 수암, 윗수암]이 있다.
1970년대 중반 군사 도로로 개설된 지방도 921호선이 개통되면서 청도와 영천을 남북으로 잇고 있다.
마일리에는 많은 지석묘가 있다. 그 중 마일리 입구 당 숲에는 5∼6기의 지석묘가 있었으나 새마을 사업으로 파괴되고 잔석 1개만 남아 있고, 평지 마을 동북쪽 산소 옆에는 4∼5기의 지석묘가 있다. 또한 두 지역에 수십 개의 성혈을 확인할 수가 있다. 한편 외두리 마을과 신당 마을 사이 들판에는 많은 지석묘가 남아 있었으나 파괴되고 10여 기 정도 남아 있는 것을 확인할 수가 있다.
평지 마을 동남쪽에 있는 능선에 토기 등 유물 산포지가 있다. 유물 산포지는 대부분 밭으로 경작되고 있으며, 유적지가 있는 바로 앞으로는 마일천이 흐르고 있다. 이 부근에서 나오는 원삼국 시대 토기 조각이 발견되고 있고, 돌도끼가 출토되고 있는 것을 보면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