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50178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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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經緯學校 |
분야 | 문화·교육/교육 |
유형 | 기관 단체/학교 |
지역 |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군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김형목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897년 4월 24일 - 경위 학교 설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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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가 시기/일시 | 1901년 2월 27일 - 직산군 공립 소학교로 인가 |
성격 | 사립 초등학교|근대 학교|초등학교 |
설립자 | 민철훈|김병원 |
[정의]
개항기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 직산읍 구동리에 있었던 교육 기관.
[개설]
경위 학교는 천안을 대표하는 근대 초등 교육 기관으로, 현재의 직산 초등학교의 전신이다.
[교육 목포]
대한 제국 때의 사립 학교는 문명사회 건설을 표방하는 가운데 부국강병책 일환으로 설립되었다. 문명사회 건설에 의한 독립 국가 건설이 바로 교육 목표였다.
[변천]
1897년 4월 24일에 직산현 사립 경위 학교로 설립되었고, 1901년 2월 27일 직산군 공립 소학교로 인가받았다. 초기 임원진은 교장 민철훈(閔哲勳), 감독 지희렬(池喜烈), 명예 교사 민재기(閔載棋), 남상순(南相珣), 이용성(李龍性), 서광전 등이었다. 1909년 9월 민철훈 사임 이후 김병원(金炳原)이 교장을 맡았다.
1949년 12월 30일에 직산 국민학교로 개칭하였고, 1996년 3월 1일 직산 초등학교로 개칭하였다.
[교육 활동]
교과 과정은 한글, 산수, 지리, 역사, 도화, 습자, 독서, 체조 등이었다. 체조는 상무정신을 일깨우는 수단으로 병식 체조나 다름없었다. 학부에서는 경위 학교 교육 내실화를 위하여 200여 원에 해당하는 물리학 기계를 기부하였다. 이에 부응하여 직산 민단과 시계(詩契) 회원 등도 200여 석과 수백 원을 의연하는 등 교육 시설 확충과 내실화를 도모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학부는 교과서를 기부하는 한편 공립 보통학교로 인가를 검토하는 등 관심을 표명하였다. 당시 재학생은 70여 명이었다.
1907년 6월 경위 학교 학도 정운상(鄭雲翔), 민재길(閔載吉), 송창한(宋昌漢), 민갑훈(閔甲勳) 외 30명은 국채 보상 운동에 즈음하여 17환 10전 의연금을 내었다. 이는 직산 지역 국채 보상에 대한 관심을 고취시키는 요인 중 하나가 되었다. 1910년 학생 10여 명이 시험에 응시하기 위하여 상경하였다가 경비 문제로 응시하지 못하고 방황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서울에 거주하는 직산 출신 농상공부 주사 오두환(吳斗煥)이 이들을 후원하였다. 1908년에는 국문 야학교를 설립하여 노동자 60여 명을 모집하는 등 민족의식을 일깨우는 데 앞장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