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495 |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정담 |
채록|수집|조사 시기/일시 | 1986년 3월 10일 - 「문단바위」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충남전설집』 하권에 수록 |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7년 - 「문단바위」 부여군에서 발행한 『가림의 옛터』에 수록 |
관련 지명 | 문단바위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
채록지 | 구교리 -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구교리 |
성격 |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상 영감|장수 |
모티프 유형 | 역사 사실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문단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
[개설]
「문단바위」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군사리 성흥산(聖興山) 아래에 있는 문단바위와 관련하여 전하는 이야기이다.
[채록/수집 상황]
「문단바위」는 1986년 3월 10일 충청남도향토문화연구소에서 발행한 『충남전설집』 하권에 수록되어 있다. 2007년 부여군에서 발행한 『가림의 옛터』에도 수록되어 있다. 부여읍 구교리에서 마을 주민에게 채록한 것이다.
[내용]
옛날 성흥산 아래편에 큰 바위가 있었다. 바위 안에는 보물이 들어 있다는 이야기가 전하여 왔는데, 바위의 문을 허물기 위하여 삽자루를 대면 마른하늘에서 벼락이 쳐서 사람이 죽었다고 한다. 심한 가뭄이 든 어느 해에는 사람들이 더욱 모여 벼락을 맞아 죽은 이들이 많았다고 한다. 당시 임천면에 소문난 고리대금업자인 상 영감이라는 인물이 살고 있었다. 상 영감도 성흥산 아래편에 있는 바위에 대한 소문을 들었다. 바위를 생각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는데, 꿈에 상 영감의 앞에 먼지가 뿌옇게 일며 군대가 나타났다.
군대를 끌고 온 사람은 백제 장수 목금지였다. 목금지가 상 영감에게 자신이 이끌고 온 군사들은 백제 시대 성흥산성에서 당나라군과 싸우다 전사한 이들인데, 성흥산 아래편 큰 바위 속에 다음 군사를 위하여 비축하여 둔 재산이 담겨 있다고 하였다. 또한 큰 바위는 백성을 위하여 싸울 때만 열리는데, 만약 다른 때 바위의 문을 만지면 필히 화를 입을 것이라고 하였다. 이어 상 영감을 가리키며 당신은 부근에서 재산이 제일 많은데, 백성들이 굶어 죽고 있어도 가만히 있을 것이냐 물었다. 앞으로는 군사들이 전사한 6월 25일에 바위에 가서 제사를 지내 주고, 고리대금업을 그만두라고도 하였다. 장수는 3년을 그대로 따른 이후 다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자 하고는 상 영감 가까이에 와서 칼을 번쩍 빼 들었다. 그러자 상 영감이 놀라며 꿈에서 깼다.
상 영감이 날짜를 확인하여 보니 장수가 말한 날짜가 열흘도 남지 않았으므로 집안사람들을 서두르게 하여 제사를 크게 지내 주었다. 그러자 제사를 지내 준 해 비가 많이 와서 곡식이 잘되어 어려운 사람들이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상 영감은 장수가 말한 대로 3년간 약속을 잘 지켰다. 3년째 제사를 지내고 나서 상 영감은 밤에 피곤하여 깜빡 잠이 들었다. 꿈에서 지난번의 장수가 나타나서 상 영감의 정성 덕분에 성흥산성(聖興山城)[부여 가림성(扶餘 加林城)] 부근에 안착하였다고 말하였다. 그런 뒤 앞으로 재산을 소작하는 사람들에게 전부 나누어 주고 석 달 안에 살던 곳을 떠나라고 하였다. 거처를 옮겨 충청남도 천안에 있는 취암산 검은 바위 아래에서 제사를 지내면 앞으로 상 영감의 가문에 큰 별이 나타날 것이라고 하였다.
꿈에서 깬 상 영감은 다시 장수의 말을 따라 모든 재산을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매년 취암산 아래에서 제사를 올렸다. 그러자 상 영감의 후대에서는 항상 집안에 경사가 가득하였고, 상 영감의 손자가 정승까지 올랐다고 전한다.
[모티프 분석]
「문단바위」는 백제의 패망과 관련한 역사 사실 모티프가 담겨 있다. 백제의 명맥을 유지하여 달라는 요구를 후대 자손의 번영과 관련짓고 있다. 백제 유민으로서의 안타까움과 소망 의식이 담겨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