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여장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9001356
한자 喪輿掌-
영어공식명칭 Sangyeojangmo
이칭/별칭 상여장무
분야 생활·민속/민속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남도 부여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강성복

[정의]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상여의 관리와 출납을 담당하는 마을의 역원.

[개설]

상여장모는 충청남도 지역의 부여군·서산시·홍성군·공주시·예산군 등에서 주로 나타나는 공동체 관행으로, 마을에서 보유한 상여를 관리하고 출납하는 일을 책임지는 역원인 상여장무(喪輿掌務)가 잘못 전하여진 말이다. 부여 지역에서 언제부터 상여장모 관행을 행하기 시작하였는지는 알 수 없다. 상여장모는 초상이 났을 때 상여를 꾸며 주는 것은 물론이고 요령잡이를 겸하여 호상놀이와 발인 및 출상 시에 선소리를 메기기도 하였다. 또한 상을 마치면 다시 상엿집에 갖다 놓고, 봉분 조성에 사용하는 삽·가래·괭이·지게·톱 등의 도구도 관리하였다. 가을걷이를 마치면 일손을 분담하여 상엿집의 이엉을 얹는 일도 상여장모의 몫이었다.

부여 지역 상여장모의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부여용정리상여소리[충청남도 무형유산]로 널리 알려진 부여군 부여읍 용정리를 들 수 있다. 용정리 마을에는 공동 상여가 구비되어 있었는데, 마을에서 초상이 나면 주민 누구나 상여를 사용할 권리가 부여되었다. 이에 상여의 효율적인 관리를 위하여 책임감이 강한 주민 중에서 상여장모를 선출하여 상여를 운용하였다. 마을에 따라서는 상여장모를 두지 않고 마을의 심부름을 담당하는 소임(所任)이나 동장(洞長) 등이 상여장모의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였다.

[상여계]

부여 지역에서 상례를 주관하는 조직으로는 상여계·위친계·마포계·상포계·상조계 등이 있다. 이들 계는 보통 20~30명 단위로 여러 개가 중층적으로 기능하였는데, 출상에서 봉분 조성에서 이르기까지 갖가지 일을 맡았다. 그리하여 마을에서 초상이 나면 계원뿐만이 아니라 전 주민이 3일 동안 농사일을 멈추고 자발적으로 상가를 도왔다. 과거에는 별도의 부의금을 교환하지 않는 대신에 형편이 넉넉한 가정은 상주를 위하여 팥죽을 쑤어 주거나 달걀 꾸러미 등을 보내 주었다. 또한 죽은 이과 친하게 지냈던 주민이나 계원은 만장(挽章)을 1개씩 만들어 주기도 하였고, 상사를 전담하는 조직별로 규약에 따라 쌀·막걸리·삼베 등을 가져다주었다. 이처럼 마을의 구성원들이 일심동체로 장례를 치르려면 상여를 주관하는 상여장모가 필수적이었다.

[현황]

1980년대 이후 부여 지역에서는 마을의 상엿집이 미관상의 이유로 대부분 철거되었다. 이와 함께 마을 단위의 상여장모 관행도 소멸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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