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11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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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鳥寺 |
영어공식명칭 | Daejosa Temple |
이칭/별칭 | 대조암(大鳥庵)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기관 단체/사찰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구교리 126] |
시대 | 고대/삼국 시대/백제,고대/남북국 시대/통일 신라,고려/고려,조선/조선,현대/현대 |
집필자 | 정선용 |
중수|중창 시기/일시 | 1259년~1274년 - 대조사 중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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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63년 1월 21일 -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보물 지정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5월 17일 - 대조사석탑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지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89년 - 대조사 명부전 신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3년 - 대조사 범종각 신축 |
관련 사항 시기/일시 | 1994년 - 대조사 용화보전 신축 |
문화재 지정 일시 | 2010년 7월 30일 -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지정 |
현 소재지 | 대조사 -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성흥로197번길 112[구교리 산12-1] |
성격 | 사찰 |
창건자 | 담혜|겸익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6교구 본사 마곡사의 말사.
[개설]
대조사(大鳥寺)는 백제 성왕 때 창건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통일 신라를 거쳐 고려 시대에 삼층석탑[대조사석탑]과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扶餘 大鳥寺 石造彌勒菩薩立像)을 조성하였고 고려 후기에 중창하였으며, 조선 시대에도 사대부들이 즐겨 찾을 정도로 사격을 갖추고 있었다. 대조사는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구교리 성흥산 중턱에 있다.
[건립 경위 및 변천]
대조사는 527년(백제 성왕 5) 담혜가 창건하였다는 「사적기(寺蹟紀)」와, 동일한 시기에 겸익이 창건하였다는 「대조사미륵실기(大鳥寺彌勒實記)」의 기록이 공존하지만,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다. 그러나 9~10세기에 제작된 기와가 발굴되어 신라 후기, 고려 전기에 이미 존재한 사실을 알 수 있고, 석조미륵보살입상과 삼층석탑을 통하여 고려에서 나름대로 사격을 갖추고 있었던 사실도 알 수 있다. 또한 무량사의 도승 진전장로가 고려 원종 재위기인 1259~1274년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중수하였다는 「대조사미륵실기」의 기록으로 보아 13세기 후반에 중창한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그 후 16세기까지 대조사의 현황을 파악할 만한 자료가 전혀 없었는데, 『죽계일기(竹溪日記)』에서 조응록이 1608년(선조 41) 4월 초파일에 대조사에 다녀왔다고 한 점과 『필운고(弼雲稿)』에서 김영행이 어린 시절에 대조사에서 독서하던 아버지를 기리며 1736년(영조 12) 5월 대조사를 찾았다고 밝힌 점에서 17세기에도 사대부들이 여전히 즐겨 찾을 정도로 사세를 갖추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김영행이 대조사가 이미 쇠락한 모습을 안타까워하였다고 한 점에서 18세기에는 많이 쇠락한 사실도 확인할 수 있다. 1750년대 초에 작성된 『해동지도(海東地圖)』와 1745~1765년 사이에 작성된 『비변사인방안지도(備邊司印方眼地圖)』에 ‘대조암(大鳥庵)’으로 표기된 것도 쇠락한 이유와 관련이 있을 것이다. 1909년 편찬된 『사찰고(寺刹考)』에서 본존불이 관세음이었다는 사실만 언급하고, 1929년 편찬된 『부여읍지』에서 1914년 이후 사찰의 건물이 관음전 1동뿐이었다고 밝힌 이유도 쇠락과 관련이 있다.
[활동 사항]
대조사는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새벽, 아침 10시, 저녁의 하루 3회 예불을 하고 있다.
[현황(조직,시설 현황 포함)]
대조사는 입구의 계단을 따라 올라가면 정면에 원통보전이 남향하여 서 있다. 원통보전은 1927년 임천공립보통학교[현 임천초등학교] 객사의 옛 건물을 옮겨 지었다는 관음전이며, 원통보전 안에 목조보살좌상이 봉안되어 있다. 원통보전 앞에는 삼층석탑이 서 있고, 뒤에는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이 동쪽을 바라보고 우뚝 서 있다.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앞에 있는 용화보전은 다른 불당과 달리 건물 내부에 별도로 불단을 조성하지 않고 뒷벽을 유리로 처리함으로써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을 주존불로 모셨다. 이 외에도 경내에 명부전, 산신각, 범종각, 우물 위에 세워진 불유정, 종무소로 쓰이는 요사채 등의 건물이 있다. 2022년 현재 사찰에 소속된 승려는 1명이다. 신도는 약 1,000명이 등록되어 있다.
[관련 문화유산]
부여 대조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1963년 1월 21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논산시 관촉사의 석조미륵보살입상과 마찬가지로 고려 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거대한 석불이다. 대조사석탑은 2층 기단 위에 3층으로 올려져 있는데, 고려 전기에 조성되었다. 본래 3개의 지붕돌만 남아 있던 것을 1975년에 몸돌을 찾아서 복원하였으며,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현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원통보전 안에 봉안된 부여 대조사 목조보살좌상(扶餘 大鳥寺 木造菩薩坐像)은 2010년 7월 30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재[현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로 지정되었다. 목조보살좌상은 17세기에 유행하였던 보살상의 특징을 보여 준다. 2017년에는 2014년 12월 폭설로 파손되었던 석조미륵보살입상의 보개를 부여군 및 국립문화재연구소와 함께 보수하기도 하였다.
대조사는 1989년 명부전을, 1993년 범종각을, 1994년 용화보전을 신축하면서 사세를 확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