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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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器 時代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선사/석기 |
집필자 | 이기성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돌을 이용하여 도구를 만들어 사용하던 시대.
[개설]
석기 시대는 인류 문명의 시작 이래 돌을 이용하여 만든 도구인 석기를 사용하던 시대를 통칭하는 개념으로, 일반적으로 석기의 제작 방법에 따라 뗀석기를 사용하는 구석기 시대와 간석기를 사용하는 신석기 시대로 구분한다. 한반도에도 구석기 시대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1960년대 북한의 굴포리 유적, 남한의 공주 석장리 유적이 발견되면서이다. 이후 1970년대 말 연천 전곡리 유적에서 아슐리안형 석기가 발견된 이래 한반도 전 지역에서 200여 개소 이상의 구석기 시대 유적이 발견되어, 한반도 전역에 걸쳐 구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생활하였다는 것을 말해 주고 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를 구분 짓는 문화적인 특징은 토기의 등장, 간석기의 사용, 농경 등 생산 경제의 시작 등을 들 수 있는데, 한국에서는 토기가 먼저 등장하고 농경은 다소 늦게 시작하였다는 점, 그리고 신석기 시대에도 지속적으로 뗀석기와 간석기가 같이 사용되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부여의 석기 시대]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에서 체계적인 발굴을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된 사례는 없으나, 나복리 통실 유적, 부여 능산리 사지, 반교리, 좌홍리, 정림사지 연지,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 향교 뒷산 등에서 뗀석기들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부터 부여 지역이 사람들에 의하여 점유되었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 역시 발굴 조사로 확인된 것은 없으나, 나복리 유물 산포지, 은산리 유물 산포지, 부여 능산리 사지 등에서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특히 나복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간돌검, 돌살촉, 민무늬토기 조각, 반달돌칼 등과 함께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으며, 은산리 유물 산포지에서도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함께 민무늬토기 조각이 확인되어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충청남도 부여군 지역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문화 양상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점차 발견 사례가 늘어가는 만큼 앞으로의 조사 성과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