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900038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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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先史 |
영어공식명칭 | Pre-historic Period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개관) |
지역 | 충청남도 부여군 |
시대 | 선사/선사 |
집필자 | 이기성 |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의 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를 통칭하는 시대.
[개설]
선사 시대(先史 時代)는 역사 시대(歷史 時代)에 대칭되는 개념으로, 문자 자료가 없는 시대를 의미한다. 일반적으로 한국 고고학에서는 구석기 시대, 신석기 시대, 청동기 시대, 초기 철기 시대가 선사 시대에 해당한다.
충청남도 부여 지역은 금강 본류와 지류 주변으로 넓은 충적지가 펼쳐진 지형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 사람들이 생활하기에 적합한 환경을 갖추었다. 그리고 일찍부터 부여 송국리 유적 등 청동기 시대 대규모 마을 유적, 연화리 석관묘 등 초기 철기 시대 무덤 유적 등이 널리 알려져 있으며, 이러한 선사 문화는 백제 왕도의 기저 문화로 주목받아 왔다. 그러나 부여 송국리 유적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유적들은 우연한 기회에 발견되어 간단한 수습 조사만 이루어진 것들이며, 구제 발굴에서 선사 시대 유적이 확인되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또한 발견된 유적 역시 대부분 청동기 시대에 집중되어 있다는 한계를 보여 주고 있다.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
충청남도 부여 지역에서 체계적인 발굴을 통하여 구석기 시대 유적이 확인된 사례는 없다. 다만 정림사지 연지, 부여 쌍북리 요지, 부여 향교 뒷산, 반교리, 좌홍리, 나복리 통실 유적, 부여 능산리 사지 등에서 타제 석기들이 수습되어 구석기 시대부터 부여 지역에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을 알 수 있다. 신석기 시대 유적 역시 발굴 조사로 확인된 것은 없으나, 나복리 유물 산포지, 은산리 유물 산포지, 부여 능산리 사지 등에서 빗살무늬 토기 조각이 수습되었다. 특히 나복리 유물 산포지에서는 간돌검, 반달돌칼, 돌살촉, 민무늬토기 조각 등과 함께 빗살무늬토기 조각이 수습되었으며, 은산리 유물 산포지에서도 빗살무늬토기 조각과 함께 민무늬토기 조각이 확인되었다. 이를 통하여 신석기 시대부터 청동기 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생활하였음이 추정 가능하다. 부여 지역의 구석기 시대와 신석기 시대의 문화 양상은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점차 발견 사례가 늘어 가는 만큼 앞으로의 조사 성과가 기대된다.
[청동기 시대]
부여 지역의 선사 시대 유적은 대부분 청동기 시대 유적으로, 집자리와 무덤, 구덩이 유구, 농경 관련 유구 등이 확인되었다. 청동기 시대 유적은 구릉 정상부 또는 사면에 있으며, 많은 경우 집자리와 돌널무덤, 돌뚜껑움무덤, 독널무덤, 움무덤이 함께 발견되었다. 집자리가 발견되는 유적으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필두로 합정리 유적, 증산리 유적, 나복리 유적, 가중리 가좌 유적, 산직리 유적, 좌홍리 유적, 신안리 유적, 송학리 ‘나’ 유적, 나복리 통실 유적, 석우리 유적, 외리 유적 등이 있다. 집자리는 대부분 청동기 시대 중기에 해당하는, 내부에 타원형 수혈이 있는 원형의 송국리식 집자리이지만, 가중리 유적 및 산직리 유적의 2호 집자리처럼 청동기 시대 전기의 것도 일부 확인되고 있다. 무덤으로는 청동기 시대의 모든 무덤 형태가 확인되는데, 그중 주목되는 것은 고인돌이다. 부여 지역에서는 부여 송국리 유적을 필두로 청동기 시대 중기의 송국리 문화 단계에 해당되는 유적이 중심을 이루고 있으나, 고인돌 역시 80여 기 이상의 적지 않은 수가 분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초기 철기 시대]
부여 지역은 청동기 시대의 부여 송국리 유적과 더불어 초기 철기 시대의 청동기 일괄 유물이 출토되는 연화리 돌널무덤, 구봉리 돌널무덤, 합송리 돌널무덤 등이 잘 알려져 있으며 청송리 유적도 발견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유적들은 대부분 정식 발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 아니기에 정확한 양상을 파악하기 어려우며, 정식 발굴 조사로 확인된 초기 철기 시대의 유구는 나복리 유적의 집자리 1기와 원문리 유적의 움무덤 1기뿐이다. 나복리 유적의 집자리는 평면 형태가 말각방형으로 추정되며 장축 460㎝, 단축은 불명, 잔존 깊이 14㎝ 정도에 유물로는 시루 조각, 민무늬토기 조각, 석기 조각이 출토되었다. 원문리 유적의 움무덤은 조사 범위 경계선에서 확인되어 일부만 조사되었는데 조사된 규모는 노출 길이 60㎝, 너비 약 55㎝, 깊이 30㎝이다. 내부에서 원형덧띠토기 1점과 검은간토기 바닥 조각 1점이 출토되었다. 이처럼 부여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유적의 수는 적지만, 출토되는 유물은 금강 중류 및 하류 지역의 초기 철기 시대 문화 유입 양상을 설명하여 주는 중요한 자료로서 의의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