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80086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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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大昌里 彌勒佛 |
분야 | 종교/불교 |
유형 | 유물/불상 |
지역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산67-2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정성권 |
현 소장처 | 대창리 미륵불 -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 산67-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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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불상 |
재질 | 화강암 |
크기(높이) | 205㎝[높이] |
[정의]
충청남도 보령시 웅천읍 대창리에 있는 조선 전기의 석불.
[개설]
대창리 미륵불(大昌里 彌勒佛)은 웅천읍 대창리 산67-2에 있는 석불이다. 석불이 있는 곳은 장항선 철로변의 ‘미럭모탱이’라고 불리는 곳이다. 이전에 사지(寺址)가 있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으나, 현재 사지는 채석장이 들어서면서 완전히 사라지고 석불만 남아 있다.
[형태]
서 있는 형태의 석불입상이며, 전체 높이는 205㎝이다. 석불의 머리는 신체에 비해 큰 편이며, 얼굴 부분은 마모가 심하게 진행되었다. 머리 양 측면에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귀가 조각되어 있다. 불상이 착용하고 있는 옷차림은 양 어깨를 모두 덮는 형태의 통견(通肩) 형식의 대의(大衣)를 입고 있으며, 가슴에는 사선 모양의 내의(內衣)가 조각되어 있다. 두 손은 배 부근에 모은 채 약함(藥函)과 같은 형태의 지물(持物)을 잡고 있다. 양쪽 팔 부근에서 두꺼운 옷 주름을 확인할 수 있으며, 다리 부분에도 옷 주름이 두껍게 표현되어 있다.
가슴을 드러내고 두꺼운 옷 주름이 새겨진 통견 형태의 복식을 착용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1476년(성종 7) 조성된 천안장산리석불입상(天安長山里石佛立像)과 유사하다. 이 밖에 양손을 모은 형태로 지물을 잡고 있는 모습은 15세기 조성된 것으로 알려진 화성 오산리 석불입상(華城 梧山里 石佛立像)에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두 손을 가슴에 모은 형태의 수인(手印)을 취하고 있는 불상으로는 15세기 후반경 조성된 제주도 복신미륵(福神彌勒)에서도 확인된다. 이러한 점을 고려한다면 대창리 미륵불은 15세기경 조성된 조선 전기의 석불입상이라 할 수 있다.
[특징]
대창리 미륵불이 착용하고 있는 옷차림은 일반적인 통일 신라 시대나 고려 시대 석불입상이 착용하고 있는 옷차림과 차이가 있다. 양 어깨를 가리는 통견 형태의 대의는 가슴 부근에서 U자 형태의 옷 주름이 흘러내리게 만들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에 반해 대창리 미륵불의 옷차림은 마치 도포 자락을 착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러한 형태의 옷차림은 조선 전기의 석불입상에서 확인되는 복식 착용 형태이다.
[의의와 평가]
조선 전기 불교 조각사 연구에 있어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석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