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3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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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夜學運動 |
영어공식명칭 | Night School Movement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사건/사건·사고와 사회 운동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허종 |
성격 | 교육운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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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인물/단체 | 영덕청년회 |
[정의]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일어난 교육 운동.
[개설]
1919년 3.1운동 이후 문화 계몽 운동의 일환으로 야학운동이 활성화되었다.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는 1921년 영덕청년회가 노동자 대상의 일성야학을 개설하였다. 이후 청년 단체 및 지역 유지 주도로 잇달아 야학이 개설되어 민족 교육과 근대 지식 보급에 앞장섰다.
[역사적 배경]
야학의 배경은 첫째, 1919년 3.1운동 이후 실력 양성 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된 문화 계몽 운동이 크게 작용하였다. 둘째, 1920년 영덕 지역에는 3개의 공립보통학교와 극소수의 개량 서당만이 있을 정도로 부족한 교육 시설이 작용하였다. 셋째, 교육비가 많이 소요되는 보통학교에 보내기 어려운 경제 사정이 작용하였다. 넷째, 어려운 경제 형편 등의 이유로 취학 기회를 잃어 문맹자가 된 성인의 교육열이 작용하였다.
[경과]
1920년대 전반 대부분의 야학은 청년 단체가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1921년 영덕청년회는 창립 후 노동자 대상의 일성야학을 개설하였며, 1922년에는 어려운 가정 형편으로 보통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아동을 대상으로 융덕학원과 여학생 대상의 야학을 설립하여 운영하였다. 영해면·오보면·축산면·달산면에서도 지역 유지와 청년들이 야학을 개설하여 운영하였다. 청년 단체가 결성되지 못한 곳에서는 지역 유지가 야학을 설립하였다.
야학의 교과목은 대체로 산술, 국어, 일본어가 기본 과목이었으며, 주산·지리·역사·창가 등을 교수하였다. 야학 운영의 경비는 지역 유지들의 기부가 대부분이었으며, 일부는 계(契)를 조직하여 경비를 마련하였다. 청년들이 각 지방을 돌아다니며 약을 팔아 경비를 마련하는 경우도 있었다.
1920년대 중반에는 오보면의 근성야학, 병곡면의 송천야학, 삼사동청년회는 동명학원을 운영하였다. 축산면·영해면 등지에서도 기존 야학과 함께 지역 유지와 청년들이 주도하여 야학을 신설하여 운영하였다. 1928년 5월 무렵 영덕 지역에는 주학(晝學) 기관이 15개, 야학 기관이 40여 개였으며, 학생 수는 3천여 명에 이르렀다.
[결과]
영덕 지역의 아동과 성인들이 야학을 통해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을 함양하자 일제는 재정이 취약하고 무자격 교원 등의 이유로 6개 야학과 40여 개의 야학의 인가를 취소하거나 강제로 야학과 학원을 폐쇄하였다. 청년들과 일부 지역 유지는 일제의 탄압을 무릅쓰고 다시 야학과 학원을 개원하여 운영하였다. 이 과정에서 영덕청년동맹이 운영하던 야학의 교재를 출판법 위반의 이유로 이기석과 노병주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고, 야학 교재가 압수되기도 하였다.
[의의와 평가]
야학운동은 교육 시설의 부족과 어려운 경제 형편으로 취학하지 못한 아동과 취학 기회를 잃어 문맹 상태에 있던 성인의 문맹 퇴치에 이바지하였다. 나아가 봉건 의식 타파와 근대 지식 보급에 공헌했으며, 민족의식과 계급의식의 함양에 크게 기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