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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김덕오(金德五)[1680~1748]는 『주역』과 수학에 조예가 깊었다. 1723년(경종 3) 영해 출신의 동년배인 박용상(朴龍相)·백시승(白始升)과 함께 진사시에 입격한 후 영좌삼경(嶺左三庚)이라고 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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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군 출신의 학자. 김도장(金道章)[1628~1721]은 일찍이 학문과 행의가 높았으며, 어머니를 효로써 봉양하고 동생과 자녀들의 교육에 정성을 다하여 고을에 명성이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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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선겸(金善兼)[?~?]은 1737년(영조 13)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1755년 나주에서 일어난 벽서사건(壁書事件)을 무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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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김성하(金成夏)[?~?]의 본관은 김해(金海), 자는 기성(器成), 호는 서암(棲庵)이다. 부친은 교위 김대원(金大元)이며, 형은 김기하(金器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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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수안김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김수(金綏)[?~?]는 문과에 급제한 관인(官人)으로 수안김씨(遂安金氏) 가문의 영덕 입향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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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수문(金秀文)[1432~1511]은 1472년(성종 3) 문과에 급제하였다. 청백리로 이름이 높았으며, 향리에서는 효행으로 명성이 높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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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응청(金應淸)[1466~1546]은 진사시에 입격한 후 1518년 현량과(賢良科)로 선발되어 관직에 올랐다. 이듬해 기묘사화가 일어나 진산(珍山)에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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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김익중(金益重)[1678~1740]은 1721년(경종 1) 무과에 급제했으며, 양무원종공신(揚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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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정구(金鼎九)[1680~1724]는 1723년(경종 3) 문과에 급제했으며, 남학훈도(南學訓導)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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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하구(金夏九)[1676~1762]는 1719년(숙종 4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해남현감(海南縣監)·부호군(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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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과 영해 지역 유교문화의 전개 양상과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고려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을 만큼 무향(武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말선초에는 영덕·영해 지역에서 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덕·영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入鄕祖)나 현조(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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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득인(白得仁)[1570~1627]은 장수현감(長水縣監)을 지냈으며 선정을 베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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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세흥(白世興)[1630~1699]은 1675년(숙종 1) 문과에 급제했으며, 강진현감(康津縣監)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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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수렴(白受廉)[?~1622]은 가학(家學)을 통해 학문을 익혔지만 수령과 함께 학제를 논의할 만큼 학식이 뛰어났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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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문신. 백원진(白源進)[?~?]은 문과 급제 후 김천도찰방(金泉道察訪)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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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해 출신의 무신. 백충언(白忠彦)[1538~1609]은 임진왜란 당시 국왕을 호종한 공으로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녹훈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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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표[1605~1684]는 백현룡(白見龍)의 문인으로 1646년(인조 2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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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백해운(白海運)[1804~1879]은 1831년(순조 31) 문과에 급제했으며, 관직은 병조참의(兵曹參議)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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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덕 지역에 설치된 불과 연기를 이용한 통신 시설. 봉수(烽燧)는 불과 연기를 이용해 외적의 침입과 같은 긴급한 상황을 알리기 위해 설치한 전통 시대 통신 시설이다. 낮에는 연기를 올리므로 ‘봉(烽)’, 밤에는 횃불을 통해 통신하므로 ‘수(燧)’라고 한다. 조선 전기 영덕군을 구성했던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는 모두 네 곳에 봉수대가 운영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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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 영덕 지역에서 운영되었던 역과 원.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구성했던 조선 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에는 관리들을 위한 교통 및 숙박 시설로서 역(驛)과 원(院)이 설치되었다. 조선 전기에는 영덕현과 영해도호부에 4개의 역과 17개의 원이 있었지만, 조선 후기에는 사회·경제적 변화 속에 원은 2개로 줄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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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부터 1895년까지 영덕 지역에 두어졌던 지방 행정 구역. 영덕현(盈德縣)은 고려 초 설치된 영덕군(盈德郡)의 소속이었다가 고려 후기 영덕현이 되었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강구면·남정면·달산면·지품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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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부터 1914년까지 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영해군(寧海郡)은 1895년 6월 23부(二十三府制)제 시행에 따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를 개편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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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3년부터 1895년까지 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지방행정구역.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1413년(태종 13) 조선 초 지방행정구역 개편의 일환으로 영해부(寧海府)를 개정한 것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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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10~1413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 설치되었던 지방 행정구역. 영해부(寧海府)는 1310년(충선왕 복위 2) 예주목(禮州牧)을 개편한 지방행정구역이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을 중심으로 창수면·병곡면·축산면 일대를 관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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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수군만호진. 조선시대에는 관방요해처(關防要害處) 중에 대형의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대개 수군만호진의 설치는 조선시대에 들어와서 새로이 설치된 것이 아니고 고려시대에 설치되었던 것을 재정비하여 이용한 것이다. 영덕현에는 이러한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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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해 지역에 부임한 문신. 윤긍(尹兢)[1432~1493]은 처향인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의 교수(敎授)를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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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진성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선도(李善道)[1544~?]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영덕 입향조로서, 영덕 지역에 퇴계학파(退溪學派)가 확산하는 데 일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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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원직(李元直)[1597~1672]은 17세기 무렵 경상도 영해도호부 일대에서 정치·사회 활동을 전개한 재야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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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천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종근(李宗謹)[?~?]은 단종(端宗)[재위 1452~1455]이 폐위되자 관직에서 물러나 영덕으로 이주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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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학자. 이화춘(李華春)[1572~1655]의 본관은 영천(永川), 초명은 종인(宗仁), 자는 덕부(悳夫)·회원(晦元), 호는 천재(川齋), 시호는 충절(忠節)이다. 증조부는 부사용(副司勇) 이지형(李枝亨), 조부는 생원(生員) 이학(李鶴), 아버지는 공조 정랑(工曹正郎) 이여우(李如瑀), 어머니는 유원지(兪遠之)의 딸 기계유씨(杞溪俞氏)이며, 부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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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희익(李希榏)[1622~1710]은 1675년(숙종 1) 영양현(英陽縣)이 독립할 때, 이를 반대하는 상소의 소수(疏首)로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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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1598년 경상북도 영덕 지역을 비롯해 조선 전역에서 일어난 일본과의 전쟁. 1592년(선조 25) 4월 13일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의 일본은 정명가도(征明假道)[명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길을 빌림]라는 명분으로 조선을 침략함으로써, 1598년(선조 31)까지 7년간 임진왜란이 조선에서 치러졌다.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을 이루는 조선 시대 영해부(寧海府)와 영덕현(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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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장윤경(張允慶)[1552~1632]은 부모의 삼년상을 치르는 동안 죽으로 연명하였으며, 세 번의 국상(國喪)이 있는 동안 상복을 입고 지내어 충효(忠孝)로 정려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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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효자. 장지건(張智謇)[1709~1780]은 국상(國喪)을 당하자 부모의 상례처럼 치렀으며, 도적을 막다가 해를 당해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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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무신. 정담(鄭湛)[1548~1592]은 1583년(선조 16) 무과에 급제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 때 웅치전투(熊峙戰鬪)에서 순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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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정자영(鄭自英)[?~1474]은 1434년(세종 16)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관직은 공조참판(工曹參判)에 이르렀다. 경학(經學)에 정통하고, 사서(史書)도 널리 섭렵하여 40여년간 사유(師儒)로 칭송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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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정종구(鄭宗龜)[1761~1837]는 1795년(정조 19) 응제시(應製詩)를 지어 차상(次上)을 한 영덕 출신의 학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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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조덕린(趙德鄰)[1658~1737]은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으로 1691년(숙종 17) 문과에 급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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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조덕순(趙德純)[1652~1693]은 1690년(숙종 16) 문과에 급제했으며,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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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92년 조선 개창부터 1876년 개항 이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해안에 자리하였으므로 해산물과 제염(製鹽)이 성행하여 영남 북부 내륙지방의 어염물(魚鹽物)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로(海路)를 통한 함경도, 강원도 지역의 조세 곡물을 운반하는 경유지로 그 경제적인 효과도 컸다. 반면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기에 동해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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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설치되었던 조선 전기 수군만호진. 조선에서는 관방요해처(官房要害處) 중에 대형 전함이 정박하기 쉽고, 태풍이나 폭풍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는 지역에 수군만호진(水軍萬戶鎭)을 설치하여 왜적의 침입에 만반의 대비를 하였다. 영해부는 이러한 여건을 갖춘 축산포(丑山浦)에 수군만호진을 설치하고 대규모의 수군을 주둔시켜 해안으로 침입하는 왜적을 막아내는 중요한 전초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