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4300397 |
---|---|
한자 | 靑坡驛 |
이칭/별칭 | 청패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제도/법령과 제도 |
지역 | 경기도 양주시 |
시대 | 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정학수 |
[정의]
고려부터 조선까지 경기도 양주에 설치된 교통·통신 기관.
[개설]
역(驛)은 고대 이래 고려·조선 시대에 중앙 정부와 지방간의 효율적인 연결망을 구축하기 위해 육로(陸路)에 설치한 교통·통신 조직의 일종으로 역참(驛站)이라고도 하였다. 청파역(靑坡驛)은 고려 시대에는 청교도(靑郊道)의 역 가운데 양주[남경] 지역에 있으면서 파주·교하·김포·부평 등지를 연결하였고, 조선 시대에는 숭례문[남대문] 밖 3리[1.2㎞] 지점[현재의 서울특별시 용산구 청파동 2가]에 있으면서 중앙의 병조 직속으로 서울과 삼남 지방을 연결하는 대로역(大路驛)이었다.
[제정 경위 및 목적]
청파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지방 통치를 위한 정령(政令)의 전달과 관리의 왕래, 외교 사행의 영송(迎送), 군사의 왕래 등 국가의 공적 행위가 원활히 수행되도록 하는 교통·통신 기구 역할을 하였다.
[관련 기록]
『고려사(高麗史)』[권82, 병지 참역(站驛)]에는 “청교도는 15개 소를 관할한다. …… 청파(淸波) 남경(南京), 노원(蘆原) 남경(南京), …… 녹양(綠楊) 견주(見州)”라 하였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경기 양주도호부]에는 “역이 6이니, 청파(靑坡)·노원(蘆原)·영서(迎曙)·평구(平丘)·구곡(仇谷)·쌍수(雙樹)이다”라고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한성부 역원]에는 “노원역은 흥인문(興仁門) 밖 4리 지점에 있고 청파역은 숭례문(崇禮門) 밖 3리에 있다. 이상의 두 역은 바로 병조(兵曹)에 예속되었다”라고 하였다.
[내용]
청파역은 고려 시대부터 교통·통신상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청파(靑坡)’는 인근에 푸른 야산 언덕이 많았던 데서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그리고 청파역 일대에는 역을 기반으로 한 역촌(驛村)이 발달하여 조선 시대에는 청파역리(靑坡驛里)라는 지명이 자료에서 확인된다.
청파역은 수도 한양의 남교(南郊)인 숭례문 밖 3리에 있었는데, 이 지역은 조선 세종 때까지는 양주에 속해 있다가 이후 소속이 바뀌어 늦어도 15세기 성종 때부터는 한성부 지역이 되었다. 그렇지만 국초부터 청파역의 관할은 비록 성외(城外)에 있다 하더라도 삼남 지방과 연결되는 도성 밖의 첫 번째 역이었기 때문에 중시되어 병조 직속으로 운영되었다.
[변천]
청파역은 다른 지역의 역들과 마찬가지로 1894년(고종 31) 갑오개혁 때까지 존속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