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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5701931
한자 鄕土飮食
분야 생활·민속/생활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전라북도 군산시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조종안

[정의]

전라북도 군산 지역에서 전통적으로 전해져 오는 고장 음식.

[개설]

고군산 군도를 바라보며 서해로 유입되는 금강, 만경강 하구에 위치하고 있는 군산은 예로부터 어족 자원이 풍부했다. 이는 신석기 시대 조개더미[패총]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밀집된 지역인 것에서도 잘 나타난다. 조개더미란 해안이나 강변에 촌락을 이루고 살았던 선사 시대 사람들이 굴이나 조개를 까먹고 버린 쓰레기 더미를 말한다.

한반도 서해안 남부에 자리한 군산은 일찍부터 수운(水運)이 발달했고, 100~200m 안팎의 구릉지와 산지가 연꽃잎처럼 둘러싸고 있어 농산물도 풍부했다. 특히 광활한 호남평야 일부를 포함하고 있어 사람이 정착할 수 있는 좋은 자연 환경을 갖추었다.

우리나라 초기 어업은 육지의 강이나 호수, 저수지 등지에서 이뤄지는 내수면 어업이었다. 그러다가 배 만드는 기술의 발달과 어획·어법의 발전으로 바다 어업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게 된다. 어로 기술과 어망 제작의 발달로 19세기 전반기에는 밤에 붉을 밝히고 고기를 유인하여 잡는 선진적인 어업이 이루어지기도 하였다.

1454년(단종 2)에 완성된 『세종 실록 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관방수어조에 따르면, 금강은 충청남도·전라남도·전라북도 지방 조세와 공물 운반으로 충청북도 청주와 옥천까지 배가 운항하는 주요 수로였으며, 당시 옥구현[지금의 군산] 지방 해산물인 조기, 준치, 대하, 숭어 등을 진상품으로 거론하고 있다. 또한, 옥구·임피 주민이 칡넝쿨을 그물 형태로 엮은 기구와 대나무로 만든 발[죽방] 등으로 잡은 수산물 20여 종류도 소개하고 있다.

1486년(성종 17)에 편찬한 『동국 여지 승람(東國輿地勝覽)』에도 옥구현 토산품 중 정어리, 굴, 오징어, 굴비, 민어, 농어, 황새기[황석어] 등의 어류를 소개하고 있다. 1530년(중종 25)에 완성된 『신증 동국 여지 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은 토산품 어류 목록에 조기, 대하[큰 새우], 대해[큰 게], 자하[자주색의 작은 새우], 석수어[조기], 합[백합 조개], 토화[갯벌의 굴], 전어, 홍어, 진어[준치], 수어[숭어], 즉어[도미], 위어[웅어, 우여] 등을 기록하고 있다.

19세기 초 발행된 『한국 수산지(韓國水産誌)』 1권에서는 군산·옥구 근해에 도미, 준치, 민어, 가자미, 조기, 적어(赤魚), 화어(火魚), 갈치, 삼치, 농어 등의 각종 어장이 형성됐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경포[지금의 군산시 경장동 일대] 주민 400여 명은 봄과 여름 칠산 앞바다[지금의 위도 근해]와 충청남도 죽도에 출어하여 조기, 준치 등을 어획했으며 당시 경포는 일본 어민 이주지로 거류민 사무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19세기 말에는 청·일 어선 수백 척이 수시로 군산 앞바다에 출몰하여 불법 어업 행위를 하였다. 그러나 무기력한 조선 왕실은 강력한 단속을 펼치지 못하다가 1882년(고종 19) 8월 23일 조·청 상민수산무역장정(商民水産貿易章程)을, 이듬해인 1883년(고종 20) 7월 25일 조·일 통상장정(通商章程)을, 1889년(고종 26) 11월 12일 조·일 통어장정(通漁章程)을 맺는다. 이는 조선해역 어로권을 일본에 정식 넘겨주는 조약으로 조선 침탈의 외교적 거점을 마련해 주는 계기가 된다.

조·일 통상장정 체결로 조선 해역에서의 어로 활동을 합법화한 일본은 군산과 고군산 군도 각 섬에 이주촌을 건설하고 침략의 전초전으로 바다를 지배하기 시작하였다. 그 과정에서 생계를 위협받은 조선 어민과 격렬한 충돌이 잦았다. 조선 아낙을 희롱하고 강간하는 등 일본 어민의 망동으로 투석전이 벌어지거나 살인으로까지 비화하는 예도 종종 있었다.

청·일 전쟁[1894~1895]에서 일본이 승리하고 일본 어민의 조선 침투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지자 조선 어민의 어업활동은 더욱 위축되었다. 1899년(고종 36) 군산 개항 이듬해인 1900년(고종 37) 경기도에 이어 충청도 등 한반도 연안의 전 어장이 개방된다. 이는 조선의 바다가 1910년(순종 4) 경술국치 이전 이미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갔음을 의미한다.

[군산 지역의 주요 어류]

군산 앞바다는 고군산 군도를 중심으로 서쪽은 어청도, 남쪽은 위도, 북쪽으로는 개야도와 충남의 크고 작은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서해 연안은 굴곡이 심하고, 수심이 얕은 특징을 지니고 있다. 특히 내륙에서 서해로 유입되는 금강, 만경강, 동진강 등 대하천의 토사 유출로 썰물일 때는 강 하구에 넓은 갯벌이 형성된다.

특히 남쪽 지방을 거쳐 올라오는 난류와 북쪽에서 내려오는 한류가 교차하는 지역으로 바닷물의 투명성이 매우 흐려 투명도가 10m 이내 되는 곳이 많다. 따라서 탁수층이 여름철에는 연안으로부터 7해리 심할 때는 10해리[18.5㎞]까지 형성되며 겨울철에는 4~5해리 정도 형성되기도 한다. 바닷물의 염도는 높지 않은 32%이며 바닷물 온도는 여름철에 연안이 28~29도 내외이다.

군산 지역의 주요 어장으로는 고군산 군도를 중심으로 연도, 어청도와 위도, 근해 어장 등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1995년 시·군 통합으로 군산시 옥도면에 속하게 된 고군산 군도선유도, 무녀도, 장자도, 관리도, 비안도 등 12개의 유인도와 50여 개의 무인도로 구성되어 있다. 신시도, 야미도 등은 2010년 4월 새만금 방조제[33.9㎞] 완공으로 육지가 됐다.

군산 연근해는 갯벌이 발달하고, 간만의 차가 커 일찍부터 다양한 어장이 형성됐다. 조선총독부 통계연보에 따르면, 1938년 군산 지역 주요 어종은 조기, 복어, 상어, 민어, 홍어, 뱅어, 갈치, 게, 삼치, 대구, 청어, 새우, 숭어, 참장어, 병치, 오징어, 가오리, 미역, 김 등 35종에 달했는데, 일본인들은 값비싼 민어, 준치, 뱅어 등을 먹었고, 조선인들은 갈치, 숭어, 아귀 등을 먹었다.

특히 참다운 물고기라는 뜻으로 진어(眞魚)로도 불리는 준치는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최고의 맛을 자랑했다. 금강에서 많이 잡혔던 준치는 맛은 좋으나 살에 가시가 많은 게 흠으로 여겨왔는데, 일제 강점기에는 일본인들이 한국인을 비하할 때 빗대어 말하는 생선으로 더 알려졌다.

1945년 해방 후 1961년까지 군산 어시장에서 위판된 주요 어종은 조기, 갯장어, 고등어, 서대, 병치, 농어, 도미, 갈치, 대구, 민어, 상어, 복어, 대하, 뱀장어, 꽁치 등 22종이고, 1964년 자료에는 뱅어, 전어, 수조기, 웅어 등 27종이며 1990년 자료에는 강물 오염으로 뱅어가 사라지고, 주꾸미가 들어있어 눈길을 끈다.

[생선을 재료로 하는 군산 음식의 특징]

군산은 산지와 구릉지로 둘러싸여 있고 하천이 유달리 많은 도시이다. 따라서 각종 농산물과 해산물이 풍부해 일찍부터 음식 문화가 발달했다. 특히 고군산 군도를 중심으로 하는 근해 어장과 금강, 만경강 등에서 잡히는 60여 종이 넘는 수산물, 그리고 다양한 농산물 중에는 지역을 대표하는 특산품으로 선정돼 임금님 수라상에 오르기도 하였다.

일제 강점기에는 일제의 쌀 수탈이 늘어감에 따라 외지 상인들과 노동력 하나만 믿고 맨손으로 이주해온 외지인들로 인구가 급격히 증가하였다. 따라서 부둣가와 시내에는 크고 작은 요릿집과 대폿집이 생겨났다. 1920년대 신문에 소개되는 개복동의 평양관[한식당]과 영정의 명월관[요리점], 평화동 농방 골목 입구에 있던 강경옥[냉면 전문] 등이 예가 되겠다.

수많은 식당이 명멸하는 가운데, 조기탕, 복탕, 민어탕, 홍어탕, 대구탕, 대하탕, 서대탕, 우럭탕, 아귀탕 등 생선을 재료로 하는 식당들은 해방 후에도 성업을 이루었다. 특히 1960~1970년대 이후 대중화되기 시작한 우럭탕과 아귀탕, 아귀찜 등은 오늘날 꽃게장, 생선회 등과 함께 외지인들도 즐겨 먹는 군산의 향토 음식으로 자리를 잡았다.

생선을 이용한 음식으로는 생선국, 생선 고추장 조림, 생선 고추장찌개, 생선 국수, 생선 냉채 조림, 생선 구이, 생선 볶음, 생선적, 생선전, 생선 전골, 생선 절임찜. 생선 조리개, 생선 조림, 생선 지짐이, 생선찜, 생선 포찜, 생선탕 등 매우 다양하며 전북은 물론, 우리나라에서 가장 발달한 음식 중 하나로 꼽힌다.

군산 지역의 향토 음식으로 생선회를 빼놓을 수 없는데, 군산에 횟집 단지가 처음 만들어진 시기는 1970년대 중반이다. 군산·옥구 앞바다에서 잡히는 수산물로 생계를 유지하던 해망동 바닷가 영세 어민들이 허름한 주택을 소규모 식당[횟집]으로 개조, 영업하면서 자연스럽게 조성됐으며 농어, 도미, 광어, 우럭 등 갓 잡아온 자연산 생선회 맛에 반한 손님들 발길이 줄을 이었다.

1960~1970년대 군산에서 이름난 생선 전문 식당으로는 한성옥, 한양옥, 생선옥, 김천옥, 평화집, 풍원 식당, 가시리, 화신옥, 명산옥, 경산옥, 청춘옥, 삼승 식당, 압강옥, 희락, 유정 초밥 등을 꼽을 수 있다. 군산 생선탕의 가장 큰 특징은 맛과 여유를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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