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640056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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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詹 |
영어공식명칭 | Yi Cheom |
이칭/별칭 | 중숙(中淑),쌍매당(雙梅堂),문안(文安)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남도 당진시 |
시대 | 고려/고려 후기,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김남석 |
출생 시기/일시 | 1345년 - 이첨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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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365년 - 이첨 성균감시 합격 |
활동 시기/일시 | 1368년 - 이첨 예문관 검열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391년 - 이첨 홍주 결성으로 유배 |
활동 시기/일시 | 1398년 - 이첨 이조 전서 집현전 학사 겸 지제교 임명 |
활동 시기/일시 | 1404년 - 이첨 예문관 대제학 임명 |
몰년 시기/일시 | 1405년 - 이첨 사망 |
출생지 | 이첨 출생지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 |
묘소|단소 | 이첨 묘소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 |
사당|배향지 | 이첨 신도비 -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 |
본관 | 신평(新平) |
대표 관직 |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
[정의]
충청남도 당진 출신의 고려 말 조선 전기의 문신.
[개설]
이첨(李詹)[1345~1405]은 충청남도 당진시 신평면에 본관을 둔 신평 이씨의 대표적 인물이다. 이첨은 고려 말 공민왕·우왕·창왕·공양왕 때 벼슬을 하였고, 조선이 건국되자 태조·정종·태종 등 세 임금을 위해 일했다. 이첨이 공민왕 때 올린 상소문은 구규(九規)[군주가 힘써야 할 9가지 사항]로 널리 알려졌고 공양왕 때에는 직언을 한 것이 계기가 되어 유배를 당하기도 하였다. 조선 건국 후 다시 등용되어 예문관 대제학을 지냈다.
[가계]
이첨의 본관은 신평(新平), 자는 중숙(中淑), 호는 쌍매당(雙梅堂), 시호는 문안(文安)이다. 아버지는 증 공찬 의정부 사(贈恭贊議政府事) 이희상(李熙祥)이며, 할아버지는 보문각 제학 이달존(李達尊)이다.
[활동 사항]
지금의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에서 태어난 이첨은 어려서부터 학문에 힘써서 1365년(공민왕 14) 성균감시에 합격하였고, 1368년에는 친시(親試)에 장원 급제하여 예문관 검열(藝文館檢閱)에 제수되었다. 그 후 문관직을 두루 거치고 1375년(우왕 원년)에는 이인임(李仁任), 지윤(池奫) 등을 탄핵하는 상소를 올렸으나 지춘주사(知春州事)로 좌천되었고, 하동에서 10년간 유배 생활을 하였다.
그 후 이인임이 이성계에 의하여 숙청되자 이첨은 1388년(우왕 14) 유배에서 풀려나 내부 부령(內部副令)을 제수받았으며, 예문관 응교(應敎)를 거쳐 경연 강관(經筵講官)에 임명되어 공양왕에게 『정관정요(貞觀政要)』를 강의하였다. 1391년(공양왕 3), 이첨은 김진양(金震陽)이 이성계를 제거하려다가 실패한 사건에 연루되어 홍주 결성으로 유배되었다.
조선이 건국된 후 이첨은 1398년(태조 7) 이조 전서 집현전 학사 겸 지제교(吏曹典書集賢殿學士兼知製敎)에 등용되었고, 1400년(정종 2)엔 첨서 삼군 부사(簽書三軍府事)로 전위사(傳位使)가 되어 명나라에 가서 고명(誥命)[중국의 황제가 제후나 오품 이상의 벼슬아치에게 주던 임명장]과 책인(冊印)[책봉 내용을 기록한 문서와 도장]을 받아 이듬해 봄에 돌아왔다. 이때 이첨은 여행기인 『관광록(觀光錄)』을 남겼다.
1402년(태종 2) 명의 성조가 즉위하자 이첨은 진하사(進賀使) 하륜(河崙)을 따라 진하 부사(進賀副使)로 명나라를 다녀왔다. 이후 이조 판서 겸 예문관 대제학이 되었고, 왕명으로 하륜 등과 함께 『삼국사략(三國史略)』과 『동국사략(東國史略)』을 찬수하였다. 이첨은 1404년(태종 4) 정헌 대부 지의정부 사 예문관 대제학 지경연 춘추 성균관 사(正憲大夫知議政府事藝文館大提學知經筵春秋成均館事)를 제수받았으며, 1405년(태종 5)에 61세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태종실록』에는 이첨이 죽자 "輟朝三日賜棺槨贈諡文安(철조3일사관곽증시문안)’"이라 기록하였고, 이첨의 인격을 종합적으로 평한 졸기에 "詹天資重厚力學能文手不釋卷(첨천자중후역학능문수불석권)"이라 기록하였다. 당진시에 거주하는 신평 이씨 후손들은 특히 ‘책에서 손을 놓지 않았다’라는 이첨의 학문적 태도를 문중의 가훈으로 중시하고 있다. 이첨의 저술로는 소설 『저생전(楮生傳)』과 『쌍매당 협장 문집(雙梅堂篋藏文集)』 등이 있다.
[묘소]
이첨의 묘소는 신평 이씨 시조 이덕명(李德明)의 묘소가 있는 충청남도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1918년에 세워진 이첨 신도비(李詹神道碑)가 당진시 송악읍 오곡리에 있다. 위치는 이첨의 묘소 동남쪽 1㎞ 지점으로, 당진 송규섭 가옥 입구인 도로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