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64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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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器興- |
영어음역 | Giheung Dure Ssaum |
영어의미역 | Giheungdure Flag fight |
분야 | 생활·민속/민속,문화유산/무형 유산 |
유형 | 놀이/놀이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
집필자 | 홍순석 |
[정의]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에서 봄철 김매기 때 행해지던 민속놀이.
[개설]
용인시 기흥구 일대에서 행해지던 두레싸움은 두레기를 매개로 봄철 김매기 때 두레 공동노동조직 간에 일어나는 싸움으로, 마을의 자긍심을 나타내는 두레기의 꿩장목을 빼앗아 싸움의 승부를 냈다. 싸움이 격렬해지면 두레기뿐 아니라 악기도 부수고 사람이 심하게 다치는 경우도 있었다. 지역에 따라 농기싸움이라고도 했는데, 지금은 민속놀이 보존 차원에서 연희물로 계승되고 있다.
[놀이도구 및 장소]
두레싸움의 주요 도구는 두레풍물패의 상징인 두레기(농기)였다. 두레기에는 “農者天下之大本(농자천하지대본)”이라는 글을 썼다. 두레기에는 용(龍)이 그려진 경우가 많았는데, 이는 수신과 용신으로서, 물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논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였다. 두레기는 대단히 커서 마을에서 제일 힘이 센 장정들만이 들 수 있었다.
두레농사를 짓는 일터에는 일반적으로 두레기를 꽂아 두었으며, 일을 하다 멀리 이동할 때에는 반드시 기를 올려놓았다. 일을 다 마친 다음 돌아올 때도 기를 앞세우고 길군악을 치면서 마을로 돌아왔다. 두레싸움은 주로 웃말과 아랫말 간의 연결 지점이 되는 저수지둑에서 행해지거나 논둑길에서 행해졌다.
[놀이방법]
기흥 지역의 두레싸움은, 들로 일하러 나갈 때 먼발치라도 이웃 농기를 마주보면 풍물로 종고(鐘鼓)를 울려 인사를 해야 하는데, 이것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 시비가 붙어 싸움으로 발전했다. 다른 두레패가 신호를 무시하고 지나치면 자기 두레에 대한 모독으로 여겨 싸움이 벌어졌던 것이다. 두레기의 꼭대기에 달린 꿩장목을 빼앗으면 이기는 것으로, 이긴 두레패는 형님으로서의 예우를 받았다. 두레싸움이 심할 경우는 두 마을 간에 싸움이 일어나기도 했으나, 종당에는 화해하고 더 친하게 지냈다. 두레싸움이 완만하게 끝날 때는 형님기를 앞세우고 길군악이 펼쳐지기도 하였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두레싸움은 두레와 관련한 생활민속의 하나이다. 두레는 조선 후기 이앙법이 전개되면서 보편적인 농민 생활풍습으로 정착되었으며, 풍물을 발전시키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두레싸움은 두레밥·두레기·두레놀이와 함께 농민 생활풍습의 일면이 되기도 했다. 기흥 지역에서는 형두레·아우두레가 정해져 있어 서열을 따졌다. 형두레는 주로 인구 비례가 많은 마을이 되었고, 근년에 생긴 작은 두레는 아우두레로서 예의를 갖추어야 했다. 이는 자연마을 단위의 배타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고, 자기 조직의 긍지를 강하게 드러낸 결과이기도 하였다.
[현황]
기흥구 일대에서 행해지던 두레싸움놀이도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두레의 역사와 함께 한다. 두레는 일제강점기 말부터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어렵게 잔존해 오다 1950년대 말을 끝으로 사라지게 되었다. 지금은 기흥구 서천동 일부 주민들로 구성된 연희물로 재현되어지고 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