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257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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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週刊龍仁 |
영어음역 | Jugan Yongin |
영어의미역 | Weekly Yongin |
분야 | 문화·교육/언론·출판 |
유형 | 문헌/연속 간행물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423[중부대로1281번길 6]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현석 |
성격 | 주간신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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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인 | 양정모 |
발행인 | 양정모 |
판형 | 타블로이드 |
창간연도/일시 | 1989년 4월 27일 |
종간연도/일시 | 1989년 7월 6일 |
총호수 | 5호 |
발행처 | 주간용인사 |
발행처 주소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423[중부대로1281번길 6] |
[정의]
주간용인사가 발행했던 주간 신문.
[창간경위]
경기도 용인 지역에서 주민의 권익을 옹호하고 소외받는 대중의 입장을 대변하는 진보적인 지역 신문을 목표로 창간되었다.
[형태]
판형은 타블로이드로 8면을 발행하였다. 흑백 인쇄이며, 가로쓰기로 구성되어 있다.
[구성/내용]
정치 및 시사 관련 사항을 포함한 용인시의 시정을 해설 안내하고 용인 지역 각종 소식과 다양한 생활 정보를 소개하면서 보수적 농촌 사회이던 용인 지역에서 기존 보수층의 견제와 무관심을 극복하고 지역의 목소리를 지면에 싣는 데 성공했다.
농지 오염 문제, 농정의 부실 문제, 농산물 개방과 농가 부채 문제, 교원노동조합 문제 등 일찍이 누구도 시도해 본 적이 없는, 당시로선 좌경으로 몰릴 수도 있는 개혁적 시각으로 사회 현안들을 과감히 지적함으로써 언론의 사명을 다하였다.
또 동부파출소에서 벌어진 민용기 주민 사망 사건을 고발하여 주민의 인권과 권익을 옹호하는 데 앞장섰으며, 전 『용인성산신문』 편집주간이었던 박용익과 함께 용인 지역 출신으로 『황성신문』 창간 멤버이자 동아일보 초대주간을 맡았던 유근의 묘를 발굴 보도하기도 했다. 지역 신문 최초로 구인구직란을 개설하여 눈길을 끌기도 했다.
[변천과 현황]
『주간용인』은 4명의 취재 기자와 1명의 편집 기자, 홍보 및 광고 요원 2명 등 총 8명의 직원으로 1988년 12월부터 창간을 준비하여, 용인시 처인구 역북동 서룡초등학교 입구에 사무실을 두고 1989년 4월에 창간되었다. 9,000명의 유료 독자를 보유했으나 구독료 납부율이 20%에도 미치지 못했고 시민주 모집 또한 당초 목표액의 10%선에 그쳐 경영 정상화에 실패하여 결국 1989년 7월 6일 제5호 발행을 끝으로 폐간되었다.
[의의와 평가]
비록 짧은 기간이었지만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용인 사회에 지역 신문의 존재를 알리고 뒤이을 다른 지역 신문들에게 타산지석의 교훈을 남겨주었던 것으로 평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