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조선 전기 용인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해주. 자는 정지(貞之). 석성현감을 역임하였다. 후손들이 매우 번창하였는데, 사후 2백여 년이 지나는 동안 자손들이 거의 천여 명에 이르렀다고 한다. 손자 오희문(吳希文)[1539~1613]은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오희문의 아들 오윤겸(吳允謙)[1559~1636]도 영의정을 지냈다. 병자호란 때 척화신으로 심양에 잡혀가 순절한 삼학사(三學士) 중의 한 사람인 오달제(吾達濟)[1609~1637]는 고손자가 된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원삼면 죽능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