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900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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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世城 |
영어음역 | Park Seseong |
이칭/별칭 | 만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 |
시대 | 조선/조선 |
집필자 | 홍영의 |
[정의]
조선 중기의 문신.
[가계]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만기(萬基). 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박환(朴煥)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부안임씨(扶安林氏)이다.
[활동사항]
박세성은 1648년(인조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1651년(효종 2) 알성문과에 을과로 급제, 사관을 거쳐 홍문관정자·예문관검열·봉교 등을 역임하였다. 1653년 겸설서(兼說書)·전적·감찰·정언 등을 역임하고, 그 뒤 평안도 암행어사로 나갔다가 이어 필선(弼善)·병조정랑·수리도감도청·장령·군기시정·보덕·헌납·삭녕군수(朔寧郡守) 등을 역임하였다.
1660년(현종 1) 동부승지로 있을 때 자의대비(慈懿大妃)의 복제 문제로 서인 송시열(宋時烈) 등과 의견 대립을 했던 윤선도(尹善道)를 두둔하다가 관직을 삭탈당하고 문외출송(門外黜送)이 되었다. 1665년 판결사(判決事)를 거쳐 남양부사·동부승지·형조참의·우부승지·호조참의·양주목사 등을 역임하였다. 단아한 인품에 겸손하였고 신중하고 의리로써 모든 일에 대처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이동읍 서리에 있으며, 박세채가 쓴 묘갈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