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850049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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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右谷里遺蹟 |
영어공식명칭 | Woogokri Remains |
분야 |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
유형 | 유적/고분 |
지역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212-3 |
시대 | 선사/청동기,고대/남북국 시대,고려/고려,조선/조선 |
집필자 | 이창국 |
발굴 조사 시기/일시 | 2009년 6월 9일~2010년 1월 31일 - 우곡리 유적 삼한문화재연구원에서 발굴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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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지 | 우곡리 유적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212-3 |
성격 | 복합 유적 |
[정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 일원에 있는 선사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의 복합 유적.
[개설]
우곡리 유적에서는 청동기시대 거석을 비롯하여 통일신라시대부터 조선시대의 각종 유구가 확인되었다.
[위치]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있는 영덕교육지원청 일대에 있다. 동쪽으로 고불봉이 있고, 서남쪽으로 오십천이 흐른다.
[발굴 조사 경위 및 결과]
영덕군의 우곡지구 도시개발사업으로 인해 삼한문화재연구원에 의해 2009~2010년 발굴조사가 실시되었다. 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거석 11기, 통일신라시대 고상식 건물지 15동 등 40기, 고려시대 기와가마 1기 및 도로유구 1기, 조선시대 구 1기 및 제방 1기 등 총 55기의 유구가 확인되었다.
[형태]
청동기시대 거석군은 유적의 중앙에 해당하는 Ⅱ구역에 8기[1~8호]가 밀집되어 있었으며, 북쪽 Ⅰ구역에 2기[9, 10호], 남쪽 Ⅲ구역에 1기[11호]가 있었다. 거석의 유형은 크게 거석만 놓은 경우[1, 2, 4, 5, 7, 8, 11호]와 고임돌이 있는 경우[3, 6, 9, 10호]로 구분되며, 고임돌이 확인되는 3·6·9·10호는 아래에 20~50㎝의 깬돌로 거석을 받쳤다. 이러한 구조는 영덕읍 남산리 고인돌군에서도 조사된 바 있다. 덮개돌[上石]의 장축 방향은 등고선 방향과 나란하거나 직교되게 배치되어 정형성을 찾아볼 수 없으며, 평면 형태는 장방형·삼각형에 가까운 제형(梯形)·부정형으로 나누어지며 장방형이 주를 이룬다. 단면 형태는 장방형, 방형, 부정형으로 나누어지며, 장방형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다. 거석의 조성 시기는 하부의 매장 시설이나 매납 시설이 확인되지 않아 분명하지 않으며, 주변에서 민무늬토기 저부(低部)와 동체편·고석 등이 수습되었는데 거석군과 관련된 유물로 추정된다. 거석군은 형태로 볼 때 고인돌의 유형이지만 조사 결과 매장유구가 아닌 상징물로 판단되며, 통일신라시대에는 주변 유구의 성격으로 볼 때 제의의 대상이 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통일신라시대 원지는 Ⅰ구역에서 확인되었으며, 호안석축(湖岸石築) 내에 인공섬이 배치된 형태이다. 평면 형태는 장방형이며, 남서쪽에 인공섬이 조성되어 있다. 조성 시기는 바닥면에서 짧은 굽다리접시[短脚高杯]와 부가구연장경호(附加口緣長頸壺)의 대각(臺脚)이 출토되었고, 원지 내부로 함몰된 호안석 사이에서 출토된 수막새로 볼 때 7세기 후반에서 8세기 후반까지 존속하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원지의 동쪽으로 ‘역ㄷ’ 자 형태로 배치되어 있는 건물지 1~4호는 원지와 관련된 중심건물로 추정되며, 일반 건물로 보기 어려운 넓은 주칸거리를 갖고 있는 점과 쌍조문수막새의 출토 등으로 볼 때, 관청 또는 귀족의 저택으로 판단된다. 고상식 건물지는 유적 전반에 걸쳐 확인되는데 주로 해발 4.5~5m 선상의 하상 범람원 경계와 인접한 비교적 가파른 지점에 밀집되어 분포하는 양상을 보인다. 평면 형태는 정면과 측면이 1칸인 것과 정면 2칸, 측면 1칸인 구조가 대부분이며, 4주식 또는 6주식이다.
[출토 유물]
출토 유물은 발(鉢)·개(蓋)·고배(高杯)·완(盌)·대부완(臺附盌)·배(杯)·파수부배(把手附杯)·옹(甕)·단경호(短頸壺)·어망추·수키와·암키와·막새·청자·분청·백자 등 토도류 457점, 철부(鐵斧)·청동지환(靑銅指環)·상평통보 등 금속류 4점, 고석(敲石)·석부(石斧)·지석(砥石)·석착(石鑿)·반월형석도 등 석기류 20점, 두레박 등 목기류 2점 등 총 438점이다.
[현황]
발굴조사 완료 후 영덕교육지원청, 아파트, 빌라, 상가 등의 건물이 세워졌다. 영덕교육지원청 동남쪽에 있는 우곡공원은 발굴조사구역 내에 있었으며 이전에는 고인돌로 알려졌던 거석 11기가 이전 복원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우곡리 유적은 청동기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조성된 유적으로 당시 지역집단의 추이와 종합적인 생활상을 연구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전에 ‘우곡리 지석묘군’으로 알려진 유적이 발굴조사를 통해 지석묘와는 관련이 없는 거석으로 확인되었는데, 앞으로 유적의 성격에 대한 연구가 좀 더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건물지와 원지에서 쌍조문막새 등이 출토된 것으로 볼 때, 이 지역은 당시 동해안으로 이어지는 교통로상의 거점 지역으로 중요시되었을 가능성이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