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덕 충효당 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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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있는 지은 지 오래된 가옥. 고택은 대개 우리의 오랜 전통적 생활양식과 의식구조, 기술, 장인에 의해 지은 목조기와집을 뜻한다. 즉, 근대 이전의 고유한 평면 및 구조 형태로 지은 우리네 살림집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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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일원에 있는 '□' 자 모양의 전통 주택. 뜰집이란 평면이 '□' 자 모양으로 되어 있어 건물 안에 뜰[內庭]이 있는 집을 일컫는 말로 정자(井字)집이라고도 한다. 뜰집의 칸 수는 24칸에서 14칸까지 있으며, 구조는 대체적으로 앞 정면 곧 바깥채는 사랑방과 마루가 있고, 오른편 안채에는 정지[부엌]와 안방 도장이 있고, 오른편 앞면에는 방 또는 마구를 배치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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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소택정(小澤亭)은 박신지(朴身之)[1629~1705]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박신지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이경(履卿), 호는 소호(小湖) 또는 택옹(澤翁)이다. 1675년(숙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춘추관기관주, 예조정랑, 성균관사예, 통례원상례, 사시정, 보령현감, 서산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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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일제강점기 정자. 소택정(小澤亭)은 박신지(朴身之)[1629~1705]가 말년을 보낸 곳이다. 박신지의 본관은 함양(咸陽), 자는 이경(履卿), 호는 소호(小湖) 또는 택옹(澤翁)이다. 1675년(숙종 1)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 춘추관기관주, 예조정랑, 성균관사예, 통례원상례, 사시정, 보령현감, 서산군수, 울산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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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이시형(李時亨)[1586~1612]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시형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태숙(泰叔), 호는 우계(愚溪)이다. 아버지는 이함(李涵)이다. 효도와 우애가 극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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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고택. 영덕 충효당 종택(盈德忠孝堂宗宅)은 재령이씨 영해파의 종택이다. 재령이씨는 경주이씨에서 분파된 성씨로 고려 성종 연간의 이우칭(李禹稱)이 재령군(載寧郡)에 봉해지면서 재령을 관향(貫鄕)으로 삼았다. 중시조는 이오(李午)이고, 이오의 증손자인 이애(李璦)[1480~1561]가 중부(仲父)인 이중현(李仲賢)이 영해부사(寧海府使)로 부임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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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전통 테마 마을. 인량리 전통마을은 ‘나라골’로 불리던 곳으로, 어질고 인자한 현인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라는 뜻의 ‘인량(人良)’이라는 이름을 얻은 마을이다. 8개 성씨, 12종가가 거주하는 곳으로, 20여 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는 한옥 마을이다.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을 비롯하여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갖춰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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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전통 테마 마을. 인량리 전통마을은 ‘나라골’로 불리던 곳으로, 어질고 인자한 현인이 많이 배출되는 곳이라는 뜻의 ‘인량(人良)’이라는 이름을 얻은 마을이다. 8개 성씨, 12종가가 거주하는 곳으로, 20여 채의 전통가옥이 남아 있는 한옥 마을이다. 다양한 농촌 체험 활동을 비롯하여 인성을 함양할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등이 갖춰진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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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분포하고 있는 인문 지리적 요소. 영덕군은 경상북도 동해안의 중부에 자리하며, 2020년 말 기준으로 인구 3만 6313명, 면적 741.25㎢에 달하는 지역이다. 영덕군의 동쪽으로 동해 바다가 있고, 남서쪽은 경상북도 청송군, 북서쪽은 영양군, 남쪽은 포항시, 북쪽은 울진군과 접하고 있다. 행정구역은 1읍, 8면, 118개의 법정리에 204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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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우칭을 시조로 하고 이애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재령이씨(載寧李氏)는 이우칭(李禹偁)[?~?]을 시조로 하고 이애(李璦)[1480~1561]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와 오촌리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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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가옥. 지족당(知足堂)은 권만두(權萬斗)[1674~1753]가 건립하였다. 권만두의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용경(用卿)이고, 호는 지족당(知足堂)이다. 장수현감을 사임한 후 고향으로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고 학문에 힘썼다. 유생들과 함께 『사례절요서(四禮節要書)』를 짓고, 『영해읍지』를 편찬하였다. 장수현감 재직시에 일어난 무신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