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선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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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구봉서원(九峯書院)은 박의장(朴毅長)[1555~1615]·박홍장(朴弘長)[1558~1958] 형제를 제향하기 위해 1665년(현종 6) 구봉정사(九峯精舍)로 처음 설립하였고, 1785년(정조 9) 서원으로 승격하였다. 제향자 박의장의 본관은 무안(務安), 호는 청신재(淸愼齋), 시호는 무의(武毅)이다. 무관으로서 관직은 경상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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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권상길(權尙吉)[1610~167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출신의 학자이다. 1635년(인조 13)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이듬해 병자호란(丙子胡亂)이 일어나자 화의(和議)를 반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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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해에 정착한 충신. 권책(權策)[1444~?]은 경상도 안동대도호부(安東大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출신의 충신이다. 권책의 두 형인 권저(權箸)와 권서(權署)가 단종 복위에 가담하여 화를 당하자, 권책은 13살의 어린 나이로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로 유배를 갔다. 이후 영덕 지역 안동권씨(安東權氏) 부정공파(副正公派)의 입향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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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강서원(南江書院)은 1571년(선조 4) 남강서당(南江書堂)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서원으로 승격하면서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황(李滉)[1501~1570]을 제향하였다. 이언적의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회재(晦齋),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설 논쟁이라 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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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경훈(南慶薰)[1572~1612]은 진사시에 입격했으며, 임진왜란 때 곽재우(郭再祐) 휘하에서 활약하였다.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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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고(南皐)[1807~1879]는 류치명(柳致明)의 문인으로 1840년(헌종 6)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문집으로 『시암집(時庵集)』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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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길(南佶)[1595~1654]은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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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가산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단산서원(丹山書院)은 1608년(선조 41) 건립된 서원으로 우탁(禹倬)[1262~1342]·이곡(李穀)[1298~1351]·이색(李穡)[1328~1396]을 배향하였다. 흥선대원군의 서원훼철령으로 철폐된 후 복설되지 않았다. 제향자 우탁의 본관은 단양(丹陽), 호는 역동(易東)으로 성균관좨주(成均館祭酒)를 지냈으며, 역학(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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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미곡리에 있는 조선 후기 재사. 대봉재사(大峯齋舍)는 1847년 권자신(權自愼)[?~1456]·권책(權策)[1442~1457]·권상길(權尙吉)[1610~1674]을 제향하기 위해 건립한 재사(齋舍)이다. 권자신의 본관은 안동(安東), 시호는 충장(忠莊)이다. 단종의 외숙부로서 1456년(세조 2) 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 등과 단종 복위를 시도하다 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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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백문보를 득관조이자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대흥백씨(大興白氏)는 백견(白堅)·백문보(白文寶)[1303~1374] 부자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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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규년(申虬年)[1544~1592]의 본관은 평산(平山)[영해(寧海)], 자는 덕수(德叟), 호는 풍림(楓林)이다. 아버지는 선략장군(宣略將軍) 신응룡(申應龍), 어머니는 허충량(許忠良)의 딸 김해허씨(金海許氏), 조부는 부사직(副司直)을 지낸 신종회(申從澮), 증조부는 수의부위(修義副尉) 신명령(申命齡)이며, 부인은 통정대부(通政大夫)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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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종부(申從溥)[1503~1575]는 1540년(중종 35) 무과에 급제하였으며, 한성판관(漢城判官)·거제현령(巨濟縣令) 등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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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신희(申禧)[1426~1526]는 영덕에 세거하는 평산신씨[영해신씨] 입향조이다.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세덕사(世德祠)에 제향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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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정가후를 시조로 하고 정곡·정진·정담을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야성정씨(野城鄭氏)는 정가후(鄭可候)를 시조로 한다. 야성은 '영덕'의 옛 지명이다. 현재 영덕군 내에 거주하는 야성정씨는 많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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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의 부속 건물. 영덕운산서원강당(盈德雲山書院講堂)은 1812년(순조 12) 백문보(白文寶)[1303~1374]와 백현룡(白見龍)[1543~1622]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운산서원(雲山書院)의 강당이다. 현재 강당 건물은 1899년(광무 3)에 새로 복설한 것이다. 백문보의 본관은 대흥(大興), 호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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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서 왕암과 권책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왕암[왕바위]」은 영덕군 창수면에 있는 왕암에 대한 사물 전설이다. 또한 단종(端宗)[재위 1452~1455]이 폐위된 후 단종에 대해 충절을 지킨 충신 오봉(五峯) 권책(權策)[1444~?]에 대한 인물 전설이다. 단종이 죽은 후 권책이 왕암을 끌어안고 호곡(號哭)하였다 하며, 그 바위에 '왕암(王巖)'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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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계서원(雲溪書院)은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박응천(朴應天)[1556년~1603]을 제향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대의 충신으로 영해박씨(寧海朴氏) 가문의 시조이다. 그 후손 박세통은 고려 고종 연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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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거무역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 운계서원(雲溪書院)은 1824년(순조 24)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유림들에 의해 건립되었다. 박제상(朴堤上)·박세통(朴世通)·박응천(朴應天)[1556년~1603]을 제향한다. 박제상은 신라 눌지마립간(訥祗麻立干) 대의 충신으로 영해박씨(寧海朴氏) 가문의 시조이다. 그 후손 박세통은 고려 고종 연간 문하시랑평장사(門下侍郞平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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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1년 동학교도 이필제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서 동학교도를 규합하여 봉기한 사건. 이필제(李弼濟)의 난은 1871년 3월 10일 동학 제2대 교주 최시형(崔時亨)과 함께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일대]에서 일으킨 사건이다. 1863년(철종 14) 동학에 입교한 이필제는 농민을 규합해 1869년 4월 진천작변(鎭川作變), 1870년 2월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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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2년(고종 9)에 간행한 『1872년 지방지도』에 수록된 영덕현·영해부의 지도. 『1872년 지방지도』는 흥선대원군(興宣大院君)이 집정(執政)하던 1872년(고종 9) 3월부터 6월까지 제작된 지도이다. 전국의 각 군현에서 해당지도를 그린 다음 중앙정부에 올리고, 조정에서는 모인 지도를 취합하여 엮은 후 전국 단위의 군현 지도로 간행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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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화천1리 곰창마을에 있는 김녕김씨 집성촌. 김녕김씨는 경상남도 김해시를 관향으로 하고, 김시흥(金時興)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화천1리 김녕김씨는 16세기 중엽 김영철(金永哲)[생몰년 미상]이 이 마을을 개척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김녕김씨 집성촌을 이루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