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황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갈암이선생신도비(葛庵李先生神道碑)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사적(事蹟)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이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滉)-김성일(金誠一)-장흥효(張興孝)로 이어지는 퇴계학통을 계승하였다. 저서로는 『갈암집(葛庵集)』과 편서로 『...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에 있는 조선 후기 신도비. 갈암이선생신도비(葛庵李先生神道碑)는 이현일(李玄逸)[1627~1704]의 사적(事蹟)을 기리기 위해 건립되었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이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滉)-김성일(金誠一)-장흥효(張興孝)로 이어지는 퇴계학통을 계승하였다. 저서로는 『갈암집(葛庵集)』과 편서로 『...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 있는 조선 시대 가옥. 경수당종택(慶壽堂宗宅)은 박세순(朴世淳)[1539~1612]이 건립한 가옥이다. 박세순의 본관은 무안(務安), 자는 공검(公儉), 호는 경수당(慶壽堂)이다. 영해 원구리에서 태어나 임진왜란 때 후방의 군수물자를 조달하는 군자감정의 직을 맡았았고, 조카 무의공 박의장이 경주와 울산 등지의 전투에서 군량미가 떨어져 곤경에 처하자...
-
삼국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 교육의 역사와 현황.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교육은 신라시대 화랑교육, 고려시대의 향교, 조선시대의 향교·서원·서당, 근대의 신식학교, 현대의 초중고등학교 설립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문신. 김하구(金夏九)[1676~1762]는 1719년(숙종 45)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해남현감(海南縣監)·부호군(副護軍)·동지중추부사(同知中樞府事) 등을 지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 있던 조선 후기 서원. 남강서원(南江書院)은 1571년(선조 4) 남강서당(南江書堂)으로 처음 건립되었다. 1621년(광해군 13) 서원으로 승격하면서 이언적(李彦迪)[1491~1553]·이황(李滉)[1501~1570]을 제향하였다. 이언적의 본관은 여주(驪州), 호는 회재(晦齋), 시호는 문원(文元)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성리설 논쟁이라 할 수 있...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남길(南佶)[1595~1654]은 진사시에 입격하였으며, 광산서원(光山書院)에 제향되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남사고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남사고 일화」는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남사고(南師古)[1509~1571]와 관련해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다. 남사고는 조선 시대 중종(中宗)[재위 1506~1544] 때의 천문관으로 풍수지리와 천문 등에 밝아 많은 신이한 행적을 남겼다....
-
조선 후기 경상북도 영덕과 영해 지역 유교문화의 전개 양상과 관련된 이야기. 조선시대 영덕현(盈德縣)과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는 고려 이래로 동해안을 방어하는 군사적 요충지로서 ‘궁마지향(弓馬之鄕)’으로 일컬을 만큼 무향(武鄕)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래서 여말선초에는 영덕·영해 지역에서 무과 급제자가 많이 배출되었고, 영덕·영해 지역에 정착한 주요 가문의 입향조(入鄕祖)나 현조(顯...
-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에 유학사상 및 한국의 전통사상을 연구·승습·보급하기 위하여 설립된 박약회의 지회. 박약회는 퇴계(退溪) 이황(李滉)을 흠모하는 학자 김호길·권오봉 등 10여 명의 모임으로 시작되었다. 이 모임은 1987년 7월 1일 도산서원 박약재(博約齋)에서 최초의 모임을 가졌다. 이후 모임이 거듭되면서 그 위세가 급속히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러자 회원들은 퇴계 선생만...
-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박응천(朴應天)[1561~1603]은 지역의 문풍과 교화에 힘쓴 향유(鄕儒)로서 운계서원(雲溪書院)에 제향되었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무신. 박의장(朴毅長)[1555~1615]은 무신으로서 임진왜란 때 여러 공을 세웠으며, 관직은 경상좌도 병마절도사(慶尙左道兵馬節度使)에 올랐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백현룡(白見龍)[1543~1622]은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임진왜란 때 의병을 일으켰다. 생원시에 입격했으며 문집으로 『성헌일집(惺軒逸集)』이 전한다....
-
세 성씨가 500년 간 나란히 세거해 온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 원구마을 이야기.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는 영양남씨(英陽南氏)·무안박씨(務安朴氏)·대흥백씨(大興白氏)가 16세기 초엽과 중엽에 걸쳐 차례로 입촌하여 약 500년간 갈등 없이 나란히 세거하고 있다. 배타적으로 족결합을 하는 한국 종족집단의 특성에 비추어 매우 특이한 사례에 속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의병. 신경제(申經濟)[1555~1614]는 정유재란 때 의병을 일으켜 화왕산성(火旺山城)을 방어하였다....
-
조선 전기 영덕 출신의 문신. 신옥(申沃)[?~?]은 농암(聾巖) 이현보(李賢輔)[1467~1555]·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門人)으로 진사시에 입격하였다....
-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 인류가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서도 오십천(五十川) 유역의 지품면 오천리, 송천(松川) 유역의 창수면 삼계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오천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으로 편년...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있는 고려 후기 교육기관. 영덕영해향교(盈德寧海鄕校)는 고려 후기 경상도 영해부(寧海府)에 설치된 국립교육기관이다. 1346년(충목왕 2)에 건립하였으며, 현재 대성전·명륜당·동재·서재·태화루(太和樓) 등의 건물을 갖추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병곡면 원황리에 있는 조선 후기 서원의 부속 건물. 영덕운산서원강당(盈德雲山書院講堂)은 1812년(순조 12) 백문보(白文寶)[1303~1374]와 백현룡(白見龍)[1543~1622]을 배향하기 위해 건립한 운산서원(雲山書院)의 강당이다. 현재 강당 건물은 1899년(광무 3)에 새로 복설한 것이다. 백문보의 본관은 대흥(大興), 호는 담암(淡庵), 시호는 충간(忠...
-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의 마을신앙, 가신신앙, 무속 등 민간신앙과 관련된 이야기. 민간신앙(民間信仰)은 민간에서 전승되어 온 초자연적인 존재에 대한 신앙 행위로서 뚜렷한 교조가 없고, 체계화된 교리도 없으며, 교회도 구성하지 못하는 특성을 보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발생적 신앙인 민간신앙은 오랜 역사를 통해 민간의 생활에 존속해 온 기층 종교적 성격을 지니고 있어, 해당 지...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축산면·창수면·병곡면 일원에 발달한 반촌의 사회문화적 특성. 옛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지역에는 조선시대 이후 유수한 반촌이 형성되었다. 또한 학문과 절의를 숭상하고 혼인으로 연대하며 지금까지 반촌 특유의 문화를 전승해 오고 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현일이 건립한 살림집.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은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字)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이다. 아버지는 참봉 이시명(李時明)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
-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에 있는 조선 후기 이현일이 건립한 살림집. 오촌리갈암고택(梧村里葛庵古宅)은 이현일(李玄逸)[1627~1704]이 건립한 살림집이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載寧), 자(字)는 익승(翼昇), 호는 갈암(葛庵)이다. 아버지는 참봉 이시명(李時明)이며, 어머니는 안동장씨 장흥효(張興孝)의 딸이다. 인량리에서 출생하였다. 조선 후기 영남학파의 거두로 '이황(李...
-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1리에 있는 대흥백씨 집성촌. 대흥백씨는 충청남도 예산군을 관향으로 하고, 백문보(白文寶)를 득관조로 하는 성씨이다. 원구리 대흥백씨는 1566년에 백인국(白仁國)[1530~1613]이 창수면 인량리에서 원구마을로 입촌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여 영양남씨, 무안박씨와 더불어 세 성씨가 나란히 정립하는 집성촌을 이루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강구면 원직1리에 있는 고성이씨 집성촌. 고성이씨는 경상남도 고성군을 관향으로 하고, 이황(李璜)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원직1리 고성이씨는 이승장(李承長)[생몰연대 미상]이 이 마을에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고성이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
경상북도 영덕군 지품면 율전리 아랫밤실에 있는 연안차씨 집성촌. 연안차씨는 황해도 연안군을 관향으로 하고, 차효전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율전리 연안차씨는 17세기 중엽에 송암(松岩) 차근황(車謹璜)[1623~1703]이 영해에서 할아버지가 잠시 거쳐 간 아랫밤실로 이거하여 정착한 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연안차씨 집성촌을 이루었다....
-
조선 전기 진성이씨 가문의 영덕 입향조. 이선도(李善道)[1544~?]는 진성이씨(眞城李氏) 영덕 입향조로서, 영덕 지역에 퇴계학파(退溪學派)가 확산하는 데 일조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시명(李時明)[1590~1674]은 장흥효(張興孝)에게 학문을 배웠으며 1612년(광해 4) 생원시에 입격하였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 이재(李栽)[1657~1730]는 퇴계학파의 학통을 계승한 학자로 문집 『밀암집(密菴集)』이 전한다....
-
조선 후기 영덕 출신의 학자·문신.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숙종 연간 퇴계학파를 이끌었으며, 정치적으로는 남인(南人)의 산림(山林)으로 추앙받았다. 그러나 당쟁의 여파 속에 갑술환국 이후 명의죄인(名義罪人)으로 낙인찍히며 정치적 고초를 당하였다....
-
1392년 조선 개창부터 1876년 개항 이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역사. 조선 시대 영덕·영해 지역은 해안에 자리하였으므로 해산물과 제염(製鹽)이 성행하여 영남 북부 내륙지방의 어염물(魚鹽物) 공급처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또한, 해로(海路)를 통한 함경도, 강원도 지역의 조세 곡물을 운반하는 경유지로 그 경제적인 효과도 컸다. 반면 일찍부터 왜구의 출몰이 잦았기에 동해안...
-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행해지는 신앙 행위의 총칭. 영덕은 영남 지역 동북쪽의 요충지로 많은 사람들이 왕래하였다. 그 결과 통일신라시대 때 많은 사찰이 건립되었고, 고려 대에는 나옹(懶翁)[1320~1376]이라는 고승이 활동하였다. 고려 후기에는 명유(名儒)인 이색(李穡)[1328~1396]이 영덕에서 배출되었으며, 조선시대에는 여러 사대부 가문을 중심으로 유학이 번창하였다. 개항...
-
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이석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를 입향조로 하는 세거성씨. 진성이씨(眞城李氏)는 이석(李碩)[?~?]을 시조로 하고 이선도(李善道)[1544~?]를 입향조로 하는 성씨로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 등지에 세거하고 있다....
-
조선 후기 영덕에 정착한 학자. 차응주(車應周)[1524~1585]는 퇴계(退溪) 이황(李滉)[1501~1570]의 문인(門人)이며, 유고로 『대봉일고(大峯逸稿)』가 전한다....
-
퇴계의 정맥을 계승한 경상북도 영덕군의 학자 이현일의 이야기. 이현일(李玄逸)[1627~1704]은 경상도 영해도호부(寧海都護府) 인량리(仁良里)[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인량리] 나랏골 본가에서 태어났다. 이현일의 본관은 재령이씨(載寧李氏)로 석계(石溪) 이시명(李時明)[1590~1674]의 7남 3녀 중 3남이다. 재령이씨 영해파(寧海派)는 이현일의 고조부인 이애(李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