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돌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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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76년부터 1910년까지의 경상북도 영덕군 지역의 역사. 개항기 영덕 지역에서는 봉건 질서의 모순이 심화되는 가운데, 반봉건 농민 항쟁의 일환으로 이필제(李弼濟)의 난(亂)이 일어났다. 또한 우리나라가 제국주의 체제에 편입되자, 영덕 유림들은 개항에 반대하는 1881년 만인소운동(萬人疏運動)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을미왜변 이후에는 일제의 침략이 노골화되는 가운데 국권 회복을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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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곡리(古谷里)는 영덕군 축산면의 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고곡1, 고곡2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고곡1리의 장전곡, 고곡2리의 안고실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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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고곡리(古谷里)는 영덕군 축산면의 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고곡1, 고곡2리로 되어 있다. 자연 마을로는 고곡1리의 장전곡, 고곡2리의 안고실마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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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에 있는 산. 고래산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상원리의 뒷산으로, 남서쪽은 기암리, 남동쪽은 고곡리에 걸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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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명승·풍습·사적·문물·지형·생태 등을 체험하거나 둘러보는 활동. 경상북도 영덕군은 낙동정맥이 남북으로 흐르는 중심 지역에 자리하고, 크고 작은 명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동쪽은 동해와 닿아 수려한 자연경관을 품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관광할 수 있고 지역 특산물도 풍부하여 여러 조건을 연계한 훌륭한 관광자원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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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명승·풍습·사적·문물·지형·생태 등을 체험하거나 둘러보는 활동. 경상북도 영덕군은 낙동정맥이 남북으로 흐르는 중심 지역에 자리하고, 크고 작은 명산들이 분포하고 있다. 동쪽은 동해와 닿아 수려한 자연경관을 품어 산과 바다를 동시에 관광할 수 있고 지역 특산물도 풍부하여 여러 조건을 연계한 훌륭한 관광자원이 두루 갖추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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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말과 기억으로 전승되는 민간 문화, 지식, 문학의 총칭. 구비 전승은 말과 기억으로 전승되는 문화, 문학, 지식 등을 총칭하는 개념이다. 구비 전승의 범주에는 설화, 민요, 무가, 속담, 수수께끼 등이 포함되는데, 영덕군에서 가장 많이 전승되고 있고, 지역적 특색을 잘 반영하는 것은 설화와 민요이다. 영덕 지역의 설화와 민요는 『한국구비문학대계』, 『인물 전설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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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영덕 지역에서 국권을 수호하기 위해 전개된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 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국권회복운동은 크게 의병운동과 애국계몽운동으로 구분된다. 의병운동을 전개한 조직으로는 영해의진(寧海義陣)·영덕의진(盈德義陣)·김하락의진(金河洛義陣)·영릉의진(寧陵義陣)이 있으며, 애국계몽운동은 주로 신교육구국운동의 형태로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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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군 출신의 의병. 김병두(金秉斗)[1879~1952]의 이명은 김경삼(金敬三)이며,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칠성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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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2리에 있는 경주최씨 집성촌. 경주최씨는 경상북도 경주시를 관향으로 하고, 최치원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도곡리의 경주최씨는 임진왜란 때 최간석(崔諫碩)[생몰연대 미상]이 입촌하여 정착한 이후 후손들이 세거하여 집성촌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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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부터 1945년까지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전개되었던 민족해방운동. 일제강점기는 일반적으로 1910년 8월부터 1945년 8월까지를 말한다. 1910년대는 일본의 무단적인 식민통치에 대응하여 국내·외의 저항 세력이 국외에 독립운동 기지를 건설하였다. 1919년에는 3.1운동이 일어나 독립운동이 전 민족적으로 전개되기 시작하였다. 1920년대에는 일제의 문화통치에 대응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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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덕 지역을 중심으로 생성 발전된 문학으로 한국문학사에서 영덕과 관련된 개인 또는 공동체가 창작하고 향유하였던 다양한 갈래의 문학. 영덕문학은 지역문학이자 향토문학으로 한국문학사의 범주에 든다. 고대에서부터 고려, 조선, 근대 이후에 이르기까지 영덕 지역을 중심으로 한 개인과 공동체는 다양한 갈래의 문학을 창작하고 향유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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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박성용(朴石用)은 1875년 4월 3일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백청리에서 출생하였다. 이명은 박대춘(朴帶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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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의열(朴義烈)[1884~1931]의 본관은 함양(咸陽), 호는 하산(河山), 이명은 박세진(朴世鎭)·박하산(朴河山)이다. 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 오촌리 258에서 아버지 박주병(朴周秉)과 어머니 무안박씨(務安朴氏) 사이의 3남 1녀 중 차남으로 출생하였다. 박의열의 형은 박의연(朴義然)[1880~1943], 아우는 박의훈(朴義熏)[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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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덕 출신의 의병. 백남수(白南壽)[1875~1950]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원구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대흥(大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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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보림리(寶林里)는 창수면 서북쪽에 자리한 산간 취락 지대로, 행정리는 보림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 거릿마, 아릿버임, 안마, 웃버임, 중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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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창수면에 속하는 법정리. 보림리(寶林里)는 창수면 서북쪽에 자리한 산간 취락 지대로, 행정리는 보림리 하나이다. 자연마을로 거릿마, 아릿버임, 안마, 웃버임, 중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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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상원리는 영덕군 축산면의 중앙 북동쪽에 자리하며, 행정리는 상원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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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서석근의 생몰 연도와 가계는 미상이며, 체포 당시 본적지가 영해(寧海)로 확인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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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백상태가 발표한 평민 출신의 의병장 신돌석의 생애를 다룬 장편 역사소설. 『소설 신돌석』은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읍 출신으로 영릉의진(寧陵義陣)을 결성한 항일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 장군의 생애와 활동을 허구화해 백상태가 2018년에 발표한 장편 역사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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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덕 출신의 의병. 신돌석(申乭石)[1878~1908]의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순경(舜卿), 초명은 신돌선(申乭先), 본명은 신태호(申泰浩), 이명은 태홍(泰洪)·태을(泰乙)·대호(大浩)이다. 돌석은 아명이며, ‘태백산 호랑이’라고도 불렸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서 7대조 진사 신후종(申厚宗) 때부터 영해(寧海)에 들어와서 살았다. 이후 영해부(寧海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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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서 의병장 신돌석에 대해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 「신돌석 의병장 설화」는 근대 개항기 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에 대한 인물 전설이다. 영덕군에는 신돌석 의병장과 관련하여 신돌석의 출생, 수련, 행적, 죽음 등 다양한 설화가 전해진다. 일부는 역사적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것도 있고, 일부는 역사적 사실과 허구가 섞여서 형성된 것도 있다.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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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의병장 신돌석 장군의 생가지.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한말 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 장군의 생가지이다. 생가는 일제 강점기 때 소실되었으며, 현재의 것은 1995년 복원한 것이다. 신돌석의 본관은 평산(平山), 본명은 태호(泰浩)이다. 1878년 지금의 신돌석장군생가지가 위치한 경상도 영해도호부 복평마을에서 태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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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영덕 출신의 의병. 신석존(申石存)[1883~1909]은 1909년 처형 당시 27세였던 것으로 보아 1883년 출생으로 추정된다. 출생지는 경상북도 영덕군 북면(北面) 구룡동(九龍洞)[지금의 지품면 눌곡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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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신우경의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본명은 신태범(申泰範)이다. 우경은 신우경의 자이다. 이명으로 신도환(申道環)이란 이름을 사용하였다. 고려 개국공신 신숭겸(申崇謙)의 후예로 1888년 2월 5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아버지 신석주(申錫柱)와 어머니 분성김씨(盆城金氏) 사이의 2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영릉의진 창의대장 신돌석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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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태백산맥을 무대로 의병 활동을 펼친 영덕 출신 의병장 신돌석 이야기. 신돌석(申乭石)[1878~1908]은 영덕 출신의 의병장으로 1906~1908년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이끌었다. '태백산 호랑이'는 신돌석을 풍자화한 이름이다. 신돌석은 태백산맥 여러 곳에 요새를 두고 탁월한 지휘력과 전투력으로 일본군 수비대를 여러 차례 격파했던 민족의 영웅이다. 축지법으로 신출귀몰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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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 지역의 선사 시대부터 현재까지의 역사. 우리나라 구석기 시대는 약 70만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며, 후기 구석기에 이르러서는 사실상 한반도 전역에 인류가 생활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덕에서도 오십천(五十川) 유역의 지품면 오천리, 송천(松川) 유역의 창수면 삼계리 일대를 중심으로 구석기 유적이 확인된다. 이 가운데 오천리 유적은 중기 구석기 혹은 그 이전으로 편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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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에 있는 근대 문화재 거리. 영덕 영해장터거리 근대역사문화공간에는 조선시대 읍성과 행정치소가 있었고, 그 주변 일대에는 장터가 형성되어 있어, 조선시대부터 근대 시기까지 영해 지역의 정치·행정·경제·생활의 중심지 기능을 하였던 곳이다. 또한 근대 시기 장터 거리의 생활상을 확인할 수 있는 근대 건축물이 많이 남아 있어 보존 가치가 높았다. 1871년 영해 동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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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9년 3월 18일 민족 독립을 위해 영덕 사람들이 일으켰던 3.1운동 이야기. 1919년 3월 18일 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동 시장에서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은 병곡면, 축산면으로 확산되고, 영덕 읍내에서 독자적으로 독립만세를 외치면서 영덕의 3·.1독립운동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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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에서 창의한 의병 부대. 영릉의진(寧陵義陣)은 1906년 3월 13일 평민 출신인 신돌석(申乭石)[1878~1908]이 조직하였다. 1908년까지 경상도 북부 지역과 강원도 동해안 지역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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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에 속하는 법정면. 영해면은 영덕군의 중앙부에 자리하며, 성내리에 행정복지센터가 있다. 법정리는 성내리, 괴시리, 대진리, 사진리, 연평리, 벌영리, 원구리, 묘곡리, 대리로 총 9개의 법정리와 24개의 행정리 그리고 자연마을 32개와 115개의 반으로 구성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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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영해면 성내리에 있는 고려시대·조선시대 읍성 터. 영해읍성은 조선시대 영해도호부의 읍성(邑城)이었다. 조선시대 이후 석성으로 존재하였으나, 1910년 일제의 읍성 철거령에 의해 대부분 고을의 읍성이 철거될 때 영해읍성도 함께 철거되면서 터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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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오두환(吳斗煥)[1881~1909]은 순국 당시 29세였기에 1881년 출생한 것으로 추정된다. 본적은 경상북도 영덕군 대서면(大西面) 궁기동(宮基洞)[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달산면 일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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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 있는 의병대장 신돌석장군 유적지. 개항기 의병장 신돌석(申乭石)[1878~1908] 장군의 애국 충절을 기리고자 1999년 조성한 유적지이다. 신돌석은 지금의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도곡리에서 태어났다. 1896년 19세 때 처음 거병했으며, 1906년에는 영릉의진(寧陵義陣)을 조직하고 경상도·강원도 일원에서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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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지역에서 국권회복운동의 일환으로 일어난 민병들의 대일 투쟁. 한말 의병운동은 1895년 을미사변(乙未事變)과 단발령(斷髮令)을 전후해서 일어난 전기 의병, 1905년 을사늑약(乙巳늑약)을 전후해서 일어난 중기 의병, 1907년 고종(高宗) 광무(光武) 황제 강제 퇴위 및 한국군 강제 해산 등을 계기로 일어난 후기 의병으로 구분된다. 당시 영덕 지역의 전기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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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이이봉의 체포 당시 판결문에는 경상북도 영해군(寧海郡) 오어면(烏於面) 희암동(喜岩洞)이에 거주하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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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임한조(林漢祚)[1881~?]는 경상북도 영덕군 영덕읍 우곡리에서 태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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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항기 경상북도 영덕 출신의 의병. 한용수(韓鎔洙)[1875~1906]는 1875년 10월 12일 경상북도 영덕군 축산면 축산리 128에서 태어났다. 영릉의진 창의대장 신돌석의 처남이다....